〈0030 부모의 역할〉
캐티는 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고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처음엔 기저귀 냄새에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줄 알았는데.”
메이가 소파에서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지금도 나가긴 나가.”
“맞아.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야.”
캐티가 냉장고를 열며 말했다.
신시아는 작게 웃었다.
아기라는 말에는 보통 부드러운 살냄새나 작은 손가락 같은 것들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실제의 아기는 먹고, 울고, 싸고, 다시 먹고, 다시 울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누군가는 닦고, 묶고, 버리고, 손을 씻어야 하는 것이구나.
캐티는 냉장고에서 아비타 맥주 두 병을 꺼냈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냉장고를 열어 캔 하나를 더 꺼냈다. 제로 칼로리 바닐라 크림 소다였다.
“신디는 이거.”
신시아는 웃으며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캐티는 병따개를 찾아 맥주 두 병을 따고, 그중 하나를 메이에게 내밀며 말했다.
“육아 퇴근 축하해, 달링.”
메이는 조용히 손뼉을 마주쳤다.
“육아 퇴근. 아주 훌륭한 표현이야.”
신시아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지금까지는 육아 근무시간이셨네요.”
메이가 대답했다.
“네. 무급이고, 휴식시간 없고, 고객 클레임은 즉시 울음소리로 발생하고, 야간근무까지 포함하는.”
메이는 캐티가 내민 맥주병을 받아 들고, 소파에 거의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하지만 고객들이 너무 귀여워서 퇴사도 못 해요.”
신시아는 그제야 조금 이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육아란 굉장하군요.”
“하면 할수록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나.”
맥주병이 낮게 부딪쳤다. 두 사람은 거의 의식처럼 조용히 한 모금을 마셨다.
신시아는 캐티에게서 건네받은 제로 칼로리 바닐라 크림 소다를 열었다. 캔을 딸 때 작은 소리가 났고, 신시아는 반사적으로 아이들 방 쪽을 보았다.
메이가 말했다.
“괜찮아요. 그 정도 소리에는 안 깨요.”
“그럼 뭘 하면 깨요?”
신시아가 묻자, 캐티가 맥주병을 든 채 대답했다.
“우리가 안심하면 깨.”
“…….”
농담인 줄은 알았지만, 신시아는 아이들 방 쪽을 한 번 더 보았다.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신시아는 소파 끝에 앉아 바닐라 크림 소다를 마셨다.
방금 전까지 장난감과 젖병과 작은 양말들이 점령하고 있던 집이, 잠깐이나마 어른들도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메이는 소파에 드러누운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 캣, 이제 우리 하루 종일 못했던 얘기 좀 합시다.”
캐티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잠깐 동안은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어도 되지 않을까?”
메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좋겠다.”
신시아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지쳐 있었지만, 묘하게 행복해 보였다.
저 두 사람은 아이들에게 하루를 거의 전부 내주고, 남은 한 줌의 밤을 서로에게 돌려받고 있는 중이었다.
십 분 정도 대화 없이 맥주만 마시던 부부는,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조용히 이어졌다. 데이케어 선생님 이야기, 아침마다 사라지는 양말 이야기, 이유식을 거의 다 먹어놓고 마지막 한 숟갈만은 반드시 거부하는 아이의 고집 이야기, 아이들이 기저귀를 떼면 돌보기가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자기암시.
메이는 말하다가도 중간중간 아이들 방 쪽으로 귀를 기울였고, 캐티는 맥주를 마시면서도 식탁 아래에 굴러다니는 작은 장난감 하나를 집어 바구니에 넣었다.
신시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크림 소다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톡 쏘는 감각이 입안에서 잠깐 살아났다가 사라졌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시작되는 부모들의 시간. 냄새를 처리하고, 손을 씻고, 창문을 열고, 겨우 병뚜껑 하나를 따는 밤. 지친 얼굴로 서로를 보며 웃는 사람들.
부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캐티가 무슨 말을 했다. 메이가 작게 웃었다. 냉장고가 낮게 웅웅거렸다.
복도 끝 아이들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시아는 캔을 양손으로 감싼 채 눈을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더는 뜨고 있기가 어려워졌다. 그녀는 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말은 거의 숨처럼 흘러나왔다.
메이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
캐티가 낮게 웃었다.
“얘도 재워야겠네.”
신시아는 대답 대신 몸을 일으켜 손님방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캐티가 얼른 따라 들어와 손님용 접이식 소파 겸 침대를 펼쳐주었다.
“감……사……합니다.”
신시아는 접이식 침대 위로 털썩 엎어졌다. 캐티는 담요 하나를 꺼내 신시아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손님방을 빠져나오며 캐티는 방금 전처럼 다시 아이들 방 쪽을 보았다.
조용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집 전체가 잠든 것 같았다.
캐티는 메이의 손에서 맥주병을 받아 치운 뒤,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도 수고했어.”
“당신도.”
거실의 조명을 끈 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0031 바이바이 베이비스〉
신시아가 눈을 떴을 때는 아침 여덟 시였다.
처음에는 꽤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라면, 적어도 그녀에게는 성실한 시간에 가까웠다.
그러나 손님방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신시아는 자신이 이 집의 시간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실 쪽에서 블록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이 집의 큰딸 헤이즐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 레오는 “눈냐! Sis!”라고 외친 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참 늘어놓았다. 그 사이로 캐티의 낮고 잠긴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아니, 그건 먹는 거 아니야. 먹는 건 이따가. 블록은 건축 자재야.”
신시아는 담요를 걷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조금 멍했다. 어젯밤에는 바닐라 크림 소다 한 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숙취를 닮은 피로가 몸에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은 이미 하루의 행사를 한 차례 치른 몰골이었다.
캐티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고, 티셔츠 어깨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한쪽 무릎 위에는 그림책이 펼쳐져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무너진 블록 탑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아이 둘은 그녀의 주위를 작은 행성처럼 맴돌았다.
“좋아. 이번에는 계획도시를 만들어보자.”
캐티가 노란 블록을 파란 블록 옆에 세웠다.
헤이즐이 손바닥으로 블록들을 단번에 내리쳤다. 블록으로 구현된 계획도시는 건설과 동시에 붕괴했다.
캐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니, 바로 부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래. 프루이트아이고로구나.”
부엌 쪽에는 메이가 커피잔을 든 채 서 있었다. 안경은 반듯했고 자세도 단정했지만, 눈 밑은 어젯밤보다 조금 더 무거워 보였다.
그녀는 토스트 접시 옆에 잘게 자른 바나나 조각을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신시아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그제야 캐티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웃으려다가 먼저 하품을 했다.
“굿 모닝, 신디. 잘 잤어?”
“네. 그런데…… 벌써 일어나 계셨네요.”
메이가 아주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레오는 여섯 시 십오 분에 일어났어요.”
신시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여섯 시 십오 분이요?”
“오늘은 늦게 일어난 편이에요.”
캐티가 블록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어제는 다섯 시 사십 분이었지.”
레오는 캐티가 들고 있던 블록을 곧바로 빼앗아갔다. 캐티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미 저항할 힘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신시아는 거실 입구에 선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 집의 어른들은 이미 하루를 한 번 끝낸 얼굴이었다.
아침 식사는 전날 저녁보다 덜 소란스러웠다.
토스트 위에는 피넛버터와 그레이프 젤리가 발려 있었고, 그 위로 얇게 썬 바나나가 줄지어 놓였다.
옆 접시에는 스크램블드에그가 김을 조금 잃은 채 놓여 있었고, 아이들 컵에는 우유가 반쯤 따라져 있었다.
“우리 집은 땅콩 알레르기가 없어서 다행이야. 피넛버터 앤 젤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땅콩버터에 바나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페이버릿 조합이지.”
“비타민과 단백질은 꼭 보충해야 하지만.”
메이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스크램블드에그는 아이들 접시에서 조금씩 바닥으로 이주했다. 캐티는 한 손으로 레오의 컵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자기 커피를 마시려다가 세 번쯤 실패했다.
메이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바나나를 더 잘랐다.
신시아는 자기 몫의 접시를 앞에 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젯밤,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두 사람은 겨우 소파에 기대어 자기 몫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캐티는 헤이즐이 잘게 자른 토스트를 받아먹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메이는 식탁 밑에 떨어진 숟가락을 주워 씻은 뒤 다시 레오의 손에 쥐여주었다.
식사가 끝난 뒤, 메이는 현관 옆 작은 선반에서 자동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
“공항까지 데려다줄게요.”
“괜찮아요. 택시를 불러도 되는데요.”
“일요일 아침이에요. 여기서 공항까지는 제가 데려다주는 편이 빠르고 편해요.”
메이는 이미 결정을 마친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다. 신시아는 더 사양하지 않았다.
캐티는 레오를 왼팔에 안은 채 현관 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헤이즐은 캐티의 바짓단을 붙잡고 있었다.
캐티는 레오를 고쳐 안으며 웃었다.
“신디. 이번 주 고생했어!”
“아니에요. 제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도 우리 멤버 세 명의 집을 돌아가며 신세 지게 될 거야.”
“네?”
“당분간은 보스턴의 학교와 밴드가 있는 뉴올리언스를 계속 오가야 하잖아. 피곤하겠지만 말이야.”
“네…….”
신시아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현관 앞에서 캐티는 레오의 손을 잡아 신시아를 향해 흔들어주었다.
“바이바이 해. 신디 이모 다음 주에 또 온대.”
신시아는 레오의 작은 손을 잡고 악수한 뒤, 몸을 숙여 헤이즐을 안아주었다.
아이들은 영영 이별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는 메이의 회색 뷰익 엔비전이 서 있었다.
차 안은 완전히 깔끔하지는 않았다. 뒷좌석에는 카시트 두 개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양말 하나와 그림책 한 권과 물티슈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신시아가 안전벨트를 매자, 메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0032 메이 앤 캐티 Mei & Katty〉
신시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뉴올리언스의 햇빛은 벌써 조금 높이 떠 있었다.
뷰익 엔비전이 아파트 공용 게이트를 빠져나와 도로로 들어서자 메이가 입을 열었다.
“신디 고향은 브루클린. 학교는 보스턴이랬죠?”
“네.”
일요일 오전의 도로는 평일보다 한결 느슨했다.
메이는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제 고향이 바로 보스턴이에요. 대학 다니느라 캘리포니아에 4년 정도 있었지만.”
신시아는 메이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럼 원래 뉴올리언스 사람이 아니셨군요.”
“네. 대학 졸업 무렵 여러 회사에 지원했는데,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이 뉴올리언스의 항만회사였죠.”
메이는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서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때부터 제 뉴올리언스 생활이 시작되고……. 캣을 만났죠.”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천천히 유턴했다.
“그 뒤로 제 인생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요. 벌써 5년……. 아니, 결혼을 결심한 때부터 치면 6년이네요.”
2019년 9월 어느 날.
메이는 캐티의 손을 붙잡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시시피 강변에서 멀지 않은 카날 플레이스 쇼핑몰에 와 있었다.
캐티는 높이 솟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번듯한 육각기둥 형태의 대리석 기둥들을 둘러보았다. 그 사이로 수많은 럭셔리 매장이 당당하게 늘어서 있었다.
캐티는 번쩍이는 폴리싱 타일 바닥을 자신의 때 묻은 스니커즈로 밟고 다녀도 되는지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메이가 연거푸 재촉하는 바람에 얼떨떨한 채 따라가며,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기, 메이. 나 이런 곳하고는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럼 오늘 고급스러운 장소에서 인연 좀 만들어 봐.”
메이는 핸드백 끈을 고쳐 잡고 티파니 매장의 유리문을 열었다.
“어……?”
메이에게 손을 붙들린 채 매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캐티는 버벅거렸다.
티파니 직원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단정한 자세로 두 사람을 맞았다. 메이는 거침이 없었다. 이미 이곳을 한차례 둘러본 듯 곧장 반지 쇼케이스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어제 제가 봐두었던 반지요.”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직원이 로즈골드빛 반지 한 쌍을 꺼내 티파니 블루 벨벳 천 위에 올려놓았다.
메이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캣, 손 줘.”
캐티는 그제야 메이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메이, 잠깐만. 이거 진짜야?”
“진짜야.”
“여기서?”
“응. 여기서.”
메이는 캐티의 손을 잡았다. 낮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고, 밤에는 클럽 무대 위에서 트럼펫을 잡던 손이었다.
메이는 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그대로 손을 맞잡았다. 무릎은 꿇지 않았다. 눈은 캐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캐티. 나랑 결혼해.”
캐티는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매장 직원 한 사람이 숨을 삼켰다.
메이가 다시 말했다.
“캐티, 대답해. 직원분들 심장 멈추겠다.”
“자, 잠깐.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검토는 했어?”
“했어. 네 번 정도.”
캐티는 반지가 끼워진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나…… 뮤지션이라 수입도 불안정하고.”
“내가 안정적이지.”
“우리 둘 다 여자고.”
“그걸 고민했으면 여기까지 관계를 이어오지도 않았겠지.”
“애는 어쩌지? 너 애 가지고 싶어 했잖아.”
“인공수정하지 뭐.”
메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캐티는 한 박자 늦게 메이를 바라보았다.
“……메이 리. 당신 지금 제정신인가?”
메이는 아주 잠깐 생각했다.
“아닌 것 같아, 캐티 피셔.”
그리고 캐티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어서 대답해.”
캐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입술이 몇 번 달싹이다가 대답이 나왔다.
“응.”
캐티는 남은 반지를 집어 들었다. 메이가 내민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동안 캐티의 손이 조금 떨렸다.
메이는 고개를 돌렸다.
직원 세 명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하고 있었지만, 모두 다 들은 얼굴이었다.
진열장 옆에 서 있던 여직원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고 있었고, 다른 두 직원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메이가 말했다.
“제 아내가 될 여자가 대답했어요. 이제 박수 치셔도 됩니다.”
그제야 박수가 터졌다.
잠시 말없이 지난 일을 떠올리던 메이가 조수석의 신시아를 흘끗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신디. 동성부부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랬죠?”
“네…….”
“하루 동안 보니까 어떠세요. 나랑 캣이랑, 어느 쪽이 ‘아내’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신시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젯밤 거실과 오늘 아침 식탁이 떠올랐다.
기저귀를 버리러 나가던 캐티.
아이들 옆에 앉아 블록을 쌓던 캐티.
부엌에서 과일을 자르던 메이.
공항까지 차를 몰고 가는 메이.
신시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분 모두요.”
메이는 잠깐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이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 역할을 둘이 나눠 맡아요.”
“어떤 식으로요?”
“밖에서 돈 벌어오는 사람, 집에서 애 보는 사람. 혼내는 사람, 달래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 기저귀 가는 사람.”
메이는 어깨를 조금 으쓱했다.
“그런 게 딱 잘라 나뉘면 편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 손이 비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둘 다 남편이고, 둘 다 아내예요.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그냥 둘 다 부모고요.”
신시아는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둘 다 부모.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메이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앞유리를 바라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임신은 제가 먼저 했어요.”
신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메이의 옆얼굴은 담담했다.
어젯밤 신시아가 보았던 영상 속에서 스튜디오를 뒤집어 놓던 모습과는 달랐다. 웃고는 있었지만, 농담만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자식은 반드시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기증자를 신중하게 골랐고, 병원에 갔고, 몇 달 동안 준비했죠.”
메이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검사, 상담, 일정, 주사와 알약. 그리고 시술. 그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아요. 서류도 많고, 돈도 들고, 몸도 피곤하고.”
“아…….”
“그래도 제가 선택한 일이었어요.”
메이는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데 제가 헤이즐을 낳고 나서 어느 날 캣이 그러더라고요. 저만 애 낳게 할 수는 없다고.”
신시아는 눈을 깜박였다.
“캐티 선배도요?”
“네. 자기도 낳겠다고요.”
메이는 그때를 떠올리듯 아주 작게 웃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캣이 워낙 그런 식으로 말하잖아요. 대단한 결심도 마치 맥주 한 병 더 따겠다는 것처럼.”
신시아도 조금 웃었다.
“하지만 진심이었죠?”
메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헤이즐을 낳고, 열여섯 달 뒤에 캣이 레오를 낳았어요.”
신시아는 뒷좌석의 빈 카시트 두 개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아이 둘의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작은 자리들 뒤에 두 사람의 임신과 출산이 있었고, 어젯밤부터 자신이 지켜본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 두 분 다…….”
신시아는 말을 고르다 멈췄다.
메이가 그 말을 대신 이어주었다.
“둘 다 엄마죠.”
메이는 아주 짧게 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둘 다 몸으로도 알게 됐고요.”
신시아는 그 말의 무게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거실에서 맥주병을 들고 앉아 있던 두 사람의 피로와, 오늘 아침 바닥에 앉아 블록을 쌓던 캐티의 얼굴이 조금 다르게 떠올랐다.
신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군요.”
메이는 웃었다.
“네. 그런 거예요.”
공항 표지판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