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제안>

메이가 모는 뷰익은 국내선 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메이는 가장 오른쪽 차선에 천천히 차를 세운 뒤 비상등을 켰다.

검은 백팩을 가슴에 안고 있던 신시아는 조수석 문을 열기 전, 잠시 메이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요. 도착하면 연락하고요.”

메이의 말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신시아는 잠깐이나마 자신이 캐티와 메이의 자녀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지나치게 염치없는 것 같아, 곧바로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네. 연락드릴게요.”

신시아가 조수석에서 내리려던 찰나,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차선을 비켜달라는 뜻인 줄 알았지만, 백미러를 흘끗 본 메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디아 콜먼 대표님이에요.”

신시아도 뒤를 돌아보았다. 버건디색 콜벳이 뷰익 뒤에 멈춰 서 있었다. 운전석 창문 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민 리디아가 외쳤다.

“메이 씨, 주차장에 세워요. 할 말이 있어요.”

“신디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아니요! 제가 메이 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 길을 크게 한 바퀴 돌아서 주차장으로 가요!”

“제게요? ……네. 그럴게요.”

메이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리디아의 말대로 주차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신시아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리디아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통화와 밴드 멤버들이 보낸 메시지가 잇달아 떠 있었다.

메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오는 동안에는 휴대폰이 진동하는 줄도 몰랐다.

Coleman, Lydia> 신디, 전화를 못 받는구나. 캣에게 걸어볼게.

St.Claire, Louise> 저는 남편과 아들과 일요일을 보내는 중. 이번에는 제가 배웅하기 어렵겠네요. 다음 주에 만나요.

Fisher, Katty> 신디, 공항에 도착했겠지? 잠깐 기다려. 리디가 너 배웅하러 간대.

Coleman, Lydia> 신디, 캣에게 연락해봤다. 지금 메이 씨 차를 타고 있지? 내가 공항으로 갈게.

신시아는 자신을 배웅하겠다고 일부러 공항까지 찾아온 리디아에게 괜히 황송해졌다.

그리고 얼른 루이스와 캐티에게 답장을 써 보냈다.

Me> 지금 콜먼 대표님 만났어요! 메이 씨와 함께 주차장에 차를 세우시는 중이에요.

Fisher, Katty> 다행이다! 조심히 가, 신디.

St.Claire, Louise> 조심히 가고, 도착하면 알려줘요.

공항 주차장에 버건디색 쉐비 콜벳과 회색 뷰익 엔비전이 나란히 멈춰 섰다.

콜벳에서 내린 리디아는 재킷 옷깃을 여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추워진다고 하더니. 메이 씨는 안 추워요?”

“보스턴 사람인 저도 남부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 정도만 되어도 쌀쌀하네요.”

메이는 그렇게 대답하고 신시아를 돌아보았다.

“신디는 별로 안 춥죠?”

“네. 오히려 어제가 더웠는걸요. 지금도 겨울치고는 온화하게 느껴져요.”

리디아가 피식 웃었다.

“과연 북동부 사람답구나.”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튼 뒤, 세 사람은 주차장에서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신시아는 리디아와 나란히 걸으며 중얼거렸다.

“대표님, 굳이 저를 배웅하러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아니, 배웅해야지. 애엄마들은 주말 중 적어도 하루는 자식에게 붙잡혀 살지만, 난 남편도 자식도 없으니까. 널 배웅해야지. 그러고 나서 메이 씨에게 상의할 문제도 있고.”

그 말을 들은 메이는 뒤에서 걸어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밴드를 일반적인 회사에 비유하기는 어렵지만, 배우자가 소속된 밴드의 리더라면 넓은 의미에서는 배우자의 상사에 해당했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차까지 멈춰 세웠다면, 분명 ‘커피나 한잔합시다’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는 아닐 터였다.

터미널 안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뉴올리언스를 떠나는 관광객들이 끄는 수트케이스 바퀴 소리와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타박하는 부모들의 목소리, 안내 방송이 한데 뒤섞였다.

리디아는 터미널 안의 커피 매장에서 메이와 신시아에게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사주고, 자기 몫도 주문했다.

세 사람은 매장 옆에 잠시 서서 커피를 마셨다. 신시아와 메이가 조금씩 잔을 비우는 동안, 리디아는 간간이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리디아가 신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 주 스케줄표는 슬랙으로 보내놓을게. 내일, 20일 월요일이 개강이지?”

“개강은 화요일이에요. 월요일은 마틴 루서 킹 데이니까요.”

리디아는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았다.

“아. 내가 날짜 가는 것도 몰랐구나. 밴드 대표가 공휴일도 못 세고 있으면 안 되지.”

리디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신시아를 보았다.

“그럼 화요일부터는 수업 잘 들어. 다음 주 금요일 오후에 보자.”

“네. 이번 주 감사했습니다.”

“수고했어.”

커피를 다 마신 신시아는 빈 종이컵을 버리고, 메이에게도 인사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요. 도착하면 연락하고요.”

메이는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신시아는 자신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하는 그녀 앞에서 그저 배시시 웃었다.

“네.”

신시아는 백팩을 메고 보안 검색대 쪽으로 걸어갔다. 줄 앞에 도착한 뒤 한 번 뒤돌아보더니, 두 사람을 향해 작게 손을 흔들었다. 리디아도 손을 들어주었고, 메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시아의 모습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작아지다가 보안 구역 안쪽으로 사라졌다.

메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아이, 피곤하겠어요.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을 타지에서 보내고, 학교까지 다니잖아요.”

리디아는 여전히 신시아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인재에 대한 욕심을 조절해야 하는데, 사람이 자기 욕심을 조절하는 게 제일 어렵네요. 저 애에게 무리를 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리디아의 대답은 느렸다.

메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디아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버린 모양인지 표정이 아주 조금 찌푸려졌다.

“그 문제와도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어요. 메이 씨에게도 캣의 부인으로서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고요.”

메이는 그다음에 이어질 말이 가벼운 안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신시아가 사라진 보안 구역에서 시선을 거두고 리디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말씀하세요, 콜먼 대표님.”

“우리 밴드의 기반 지역을 뉴욕으로 옮긴다면, 캣과 메이 씨도 아이들을 데리고 따라오실 수 있나요?”

메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공항 앞 유리벽 너머로 차들이 지나갔다. 여행가방 바퀴 소리와 안내 방송, 사람들의 대화가 낮게 뒤섞였다.

“뉴욕으로요?”

“활동 무대를 넓히려면 언젠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연도, 녹음도, 함께 일할 사람을 만날 기회도 더 많으니까요.”

리디아는 신시아가 사라진 쪽을 잠깐 돌아보았다.

“신디도 보스턴에서 오가기에는 지금보다 부담이 줄겠죠. 물론 여전히 다른 도시지만요.”

메이는 한 손으로 차 열쇠를 쥔 채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캣한테는 물어보셨어요?”

“아직요. 먼저 메이 씨에게 묻고 싶었어요.”

“왜요?”

“캣은 더 큰 무대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다고 하면, 일단 좋다고 할 것 같아서요.”

리디아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캣 혼자 움직이는 일이 아니잖아요. 메이 씨와 아이들의 생활도 함께 바뀌는 일이니까, 현실적으로 어떨지 먼저 듣고 싶었어요.”

메이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리디아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예의인지, 계산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제 직장과 가족의 거주지, 아이들 데이케어까지 전부 다시 계산해야겠네요.”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메이 씨에게 먼저 묻는 겁니다.”

메이가 피식 웃었다.

“대표님은 사람을 설득할 때 꿈부터 말씀하지 않으시네요.”

“꿈은 캣에게 말하면 돼요. 메이 씨에게는 현실부터 말씀드려야죠.”

리디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메이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더 길게 웃었다.

“그건 맞아요.”

메이는 차 열쇠를 손바닥 안에서 한 번 굴렸다.

“즉답은 못 드려요. 저는 뉴올리언스에 와서 직장을 잡았고, 캣을 만났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니까요. 이곳에 세워놓은 기반을 두고 떠나려면 고민도, 각오도 필요해요.”

메이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대표님의 제안이 큰 의미를 가진다는 건 알아요. 뉴욕으로 간다는 건 더 큰 기회를 선택한다는 뜻일 테니까요.”

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은 메이가 물었다.

“대표님. 캣을 꼭 데려가고 싶은 거죠?”

리디아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반드시 데려가서, 더 많은 무대와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0034 구름 위의 잠, 지상의 실수>

2025년 1월 24일 금요일 오후 5시 45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을 출발한 여객기가 루이 암스트롱 뉴올리언스 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3시간 45분 동안 이어진 비행으로 굳은 팔다리를 주무르며 승객들은 좌석 아래와 머리 위 수납함에서 저마다 짐을 꺼내 들었다.

승객들이 좁은 통로를 따라 모두 내린 뒤, 기내를 점검하던 중년의 승무원은 후미 창가 좌석에서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린 채 잠든 앳된 여성을 발견했다.

“손님? 손님.”

“……!”

신시아가 눈을 번쩍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벌써 도착했나요?”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이륙하자마자 주무셔서 담요를 덮어드렸어요.”

신시아는 민망한 얼굴로 담요를 승무원에게 돌려주었다.

‘과제도 시험도 없었던 개강 첫 주였는데 벌써 이렇게 피곤하면…… 앞으로 밴드 활동은 어떻게 하지.’

신시아는 좌석 아래에 넣어두었던 나일론 숄더백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맨 마지막으로 기내를 빠져나온 신시아는 터미널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해가 진 하늘에는 아직 희미한 빛이 남아 있었다. 계류장 가장자리에는 미처 녹지 않은 눈이 조명 아래 희게 드러나 있었다.

‘폭설이 왔다더니…… 아직도 안 녹았네.’

지난 1월 21일,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뉴올리언스에는 약 20센티미터에 이르는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다.

허리케인이라면 누구나 대비법을 아는 도시였지만, 폭설은 달랐다.

제설 장비도,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도시라면 그저 큰 눈으로 끝났을 적설량이 이곳에서는 재난이 되었다.

도시는 사흘 가까이 마비되었고, 전날인 23일이 되어서야 주요 도로가 다시 열리고 공항 운항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디, 여기야.”

승차 구역 앞에는 긴 코트를 걸친 리디아가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검은색 쉐보레 서버번 4WD가 대기하고 있었고, 운전석에서 내린 휘태커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시아가 리디아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마중 나오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쉿. 그런 건 내가 정하는 거야.”

리디아는 웃으며 검지를 신시아의 입술에 살짝 갖다 댔다.

신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휘태커가 뒷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 레노스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도요, 미스터 휘태커. 그런데 오늘은 차가 다르네요?”

“컨티넨탈은 쉬게 두었습니다. 아직 그늘진 도로에는 얼음이 남아 있어서요.”

서버번 뒷좌석에 앉은 신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휘태커 씨가 루이스 선배 전속기사인 줄 알았어요.”

“아니야. 전문 의전 수송업체 소속이지. 루이스네 집안을 자주 모시긴 하지만 오늘처럼 나도 필요하면 부탁해.”

“오늘 같은 날이요?”

“아직 눈이 안 녹은 데가 많잖니. 내 콜벳은 오늘 집에서 쉬는 중이야. 이런 날 끌고 나왔다간 차도 빙글 돌고, 나도 같이 빙글 돌지.”

검은 서버번이 축축한 겨울 도로를 안정적으로 달려 나갔다.

맑은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노면과 길가의 잔설 위로 번졌다.

도로를 뒤덮었던 눈은 대부분 치워졌거나 녹았지만 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지난주만 해도 더워서 재킷도 벗고 다녔는데. 내가 떠나던 날부터 추워지더니 화요일엔 폭설이라니.’

차들은 대부분 평소보다 속도를 줄여 달렸다.

큰길의 눈은 거의 사라졌지만 노면은 녹은 눈으로 군데군데 젖어 있었고, 연석에는 회색으로 변한 눈더미가 남아 있었다.

낮에도 그늘이 지는 곳에는 아직 얼음이 붙어 있었고, 야자수 밑동과 마르디그라 장식 아래에도 잔설이 남아 있었다.

한겨울과 남국이 뒤섞인 듯한 풍경이었다.

“마르디그라 축제는 어떻게 되는 거죠?”

“오늘은 추워서 크루들이 연습을 조금 덜 할 뿐이야.”

리디아가 미소를 지었다.

“이 도시의 축제는 멈추지 않아.”

마침 그 순간, 픽업트럭이 끄는 퍼레이드 카 한 대가 가장 오른쪽 차선을 천천히 달려가고 있었다.

두꺼운 겨울옷에 목도리와 장갑까지 갖춰 입은 시민 크루원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검은 서버번은 그들 곁을 조용히 지나쳐 갔다.

멀어지는 퍼레이드 카를 바라보며 리디아가 중얼거렸다.

“우린 바로 연습실로 간다.”

잠시 뒤 그녀가 덧붙였다.

“저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멈추지 않듯, 우리도 연습을 멈추지 않아. 다만 오늘은 몇 곡만 맞춰보자. 나머지는 내일 하고.”

“네.”

신시아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날 저녁.

네 번째 곡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신시아는 첫 박자를 놓쳤다.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음 프레이즈마다 같은 위치에 짧은 쉼을 넣었다.

실수를 처음부터 의도한 리듬 변형처럼 자연스럽게 이어 간 것이다.

눈을 감고 허밍하던 리디아가 한쪽 눈을 살짝 뜨며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루이스는 곧바로 신시아의 안색을 확인했다.

양손은 쉼 없이 건반 위를 오가고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줄곧 신시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솔로를 마친 캐티도 트럼펫을 무릎에 올린 채 스툴에 앉아 신시아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허밍 프레이즈와 함께 곡을 마친 리디아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신디가 너무 피곤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

리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박자를 놓친 건 네가 피곤해서고, 왜 피곤한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

리디아가 신시아와 이야기하는 동안 캐티와 루이스는 짧게 시선을 마주쳤다.

오랫동안 함께 연주해 온 두 사람에게는 거의 대화와 다름없는 눈빛이었다.

‘대처는 정확했어.’

‘하지만 그런 대처가 필요했던 상황 자체가 문제예요.’

리디아는 누구보다 먼저 마이크 앰프의 전원을 내렸다.

“나머지는 내일.”

“오, 생각보다 일찍 퇴근이네.”

캐티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하고, 신시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벌써 여덟 시가 다 되어가네. 저녁은 어떻게 하지?”

“캣은 집에 가서 메이랑 애들이랑 먹어.”

리디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도 오늘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지? 같이 저녁 먹어.”

그리고 신시아를 향해 미소 지었다.

“나는 남편도 자식도 없으니까, 오늘 저녁은 신디랑 먹을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신시아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리디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오늘은 푹 재울 거야.”

<0035 즐겁고 따뜻한 집으로>

뉴올리언스 세인트클로드 지역.

새틴 크레센트 멤버들이 연습실로 빌려 쓰는 단층 건물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조지프가 왔네요.”

루이스가 테이블 위에 홍차 찻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20분 전, 루이스는 남편인 조지프 생클레어 시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조지프는 이례적인 폭설의 뒤처리 때문에 금요일 저녁까지 시청에 남아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자는 아내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차를 몰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루이스는 연습실 현관문을 열고 바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 당신, 들어와서 차 한잔 마시고 가.”

“차는 괜찮아. 그래도 밴드 분들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침착하고 맑은 바리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가까워지더니 조지프 생클레어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다.

신시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조지프가 들어오는 순간, 실내 조명이 한층 밝아진 듯한 착시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젊은 날의 알랭 들롱 같았다. 더 키가 크고, 더 몸가짐이 점잖은 사람이란 점이 달랐지만.

“이것이…… 미남의 아우라?!”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직후, 신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복숭아빛으로 물들었다.

연습실 안에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신디! 위험해! 저 사람은 루이스 남편이라고!”

캐티가 그렇게 외쳤다. 조지프도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아니에요!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에요! 저도 모르게!”

신시아는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다급하게 변명했다.

조지프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미스 레노스키. 칭찬은 감사하지만 제 아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죠.”

“이 사람은 제 거예요. 안 줄 거예요.”

루이스가 조지프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신시아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신시아는 비명을 삼키듯 소파로 뛰어들어 그대로 엎드렸다. 쿠션을 끌어안아 얼굴을 푹 파묻은 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캐티가 다시 배를 잡고 웃었다.

“신디, 축하해! 넌 남의 남편을 보자마자 플러팅한 업적을 달성했어!”

“플러팅 아니에요! 입이 먼저 나갔다니까요!”

신시아는 여전히 쿠션 뒤에 숨어 항변했다.

리디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생클레어 씨를 처음 보면 다들 한 번쯤은 그래. 네가 이상한 건 아니야.”

‘부동산 재벌에 석유재벌 딸인 루이스 선배가 왜 변호사랑 결혼했나 했는데…… 어느 변호사가 재벌가 사위를 한 게 아니었네. 재벌 아가씨가 저런 초미남을 얼른 채 간 거였어.’

신시아는 속으로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루이스에게 홍차 주전자로 머리를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깥은 이미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 아래 젖은 도로가 반짝였고, 건물 벽을 따라 남은 눈더미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

밴드 연습실 앞에는 조지프의 개인 차량이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이비색 2015년형 포드 토러스.

10년 된 차였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다만 문 가장자리와 휠에는 세월이 남긴 생활 흠집이 군데군데 보였다.

조지프는 아내를 위해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조, 우리 가는 길에 캣도 데려다 주자. 메테리에서 내려주면 돼.”

“알았어. 잠깐만, 뒷좌석부터 좀 치울게.”

조지프는 허리를 숙여 뒷좌석에 놓여 있던 서류가방과 우산, 충전 케이블, 악천후 대비용 레인 파카를 재빨리 조수석으로 옮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캐티가 잽싸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에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의원님의 차를 얻어 타다니 영광입니다.”

“미즈 피셔.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아니, 조. 받아주지 마. 캣 저러다 기고만장해져서 시정에 관한 말도 안 되는 제안까지 하기 시작할 거야.”

“시의원님! 솔직히 UFO 관찰 예산은 편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뉴올리언스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캣. 조용히 하세요.”

루이스는 뒷좌석에 먼저 탄 캐티의 품으로 핸드백을 휙 던진 뒤, 리디아와 신시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신디, 푹 쉬고 내일 봐요. 리디도.”

“모두들 날 기억해!”

캐티가 뒷좌석에서 엉뚱한 작별 인사를 외치자, 루이스가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아 버렸다.

“연습하시느라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십시오.”

조지프는 리디아와 신시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했다. 이어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고, 네이비색 포드 토러스는 조용히 연습실 앞을 떠나 메테리 방면으로 달려갔다.

몇 분 후, 휘태커 씨가 모는 서버번이 밴드 연습실 앞에 멈춰 섰다.

휘태커 씨는 언제나 그랬듯이 운전석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어와 승객을 위해 뒷문을 열어주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미즈 콜먼, 미스 레노스키.”

“휘태커 씨, 다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모시는 것이 제 즐거움입니다.”

휘태커 씨는 담담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여유롭게 뒷좌석에 앉는 리디아와, 나일론 숄더백을 껴안은 채 허둥지둥 리디아를 따라 탑승하는 신시아를 태운 후, 서버번은 그 거대한 차체를 울리며 겨울 저녁의 도로 위로 나아갔다.

“노면전차 운행이 멈춰서 안타깝네, 신디. 정상 운행 중이었다면 우리 집 근처까지 노면전차를 타고 갈 수도 있거든. 환승도 필요 없지.”

“운행 중단이라면…… 폭설 때문인가요?”

신시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자, 리디아는 어두운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은 눈과 얼음 때문에 다른 노선들도 멈췄지. 그런데 우리가 탈 노선은 그전부터 운행을 못 하고 있었어.”

“그전부터요?”

“몇 년 전에 노선 옆에서 공사 중이던 호텔이 무너진 사고가 있었거든. 그 이후 몇 년 동안 운행을 못 하다가 작년 5월에 겨우 다시 다니기 시작했는데, 얼마 못 가서 신호설비와 선로 쪽 보수 때문에 또 중단된 거야.”

리디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노면전차를 좋아하는데…… 언젠가 정상화되면 타보도록 하자.”

그리고 리디아는 운전석을 향해 재빨리 덧붙였다.

“물론 저는 미스터 휘태커의 차량 의전도 좋아합니다.”

휘태커 씨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백미러를 통해 리디아와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다.

“미즈 콜먼. 저도 뉴올리언스 시민으로서 노면전차의 여유를 사랑합니다. 하루빨리 전차가 다시 운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이, 차는 웨어하우스 디스트릭트 동쪽에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