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 밤이 되었습니다. 아기들은 눈을 감아주세요.>
큰 냄비에서 떠낸 하얗고 따끈한 닭죽이 식탁 위에 놓였다. 잘게 찢은 닭고기와 쌀알, 브로콜리와 셀러리, 당근 조각이 들어간 치킨 포리지였다.
아이들 몫은 작고 예쁘고 말랑말랑한, 쉽게 뒤집히지 않는 실리콘 그릇에 담겼다. 어른들 앞에는 허브를 뿌려 구운 치킨 브레스트와 따끈하게 데운 옥수수 브레드가 추가로 놓였다.
식탁 가운데에 샐러드 그릇을 내려놓은 뒤, 메이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식사합시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신시아는 닭죽을 한 숟갈 떠먹고, 어쩐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 감기 걸리면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이네요.”
메이는 조용히 웃었다.
“맞아요. 애들 먹이려고 싱겁게 끓인 거라, 소금이랑 후추 더 넣어도 돼요.”
자기 몫의 닭죽을 금방 비운 캐티는 곧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이들은 닭죽을 열심히 먹기보다는, 브로콜리를 집요하게 골라내고 쌀알의 감촉을 손가락으로 확인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브로콜리도 잘 씹어서 먹어. 메이 마마가 정성 들여서 끓인 거란 말야.”
아이들은 캐티가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닭죽까지 뱉지는 않았다. 캐티는 칭찬과 타이름을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닭죽을 먹였다.
메이는 레오의 입가를 닦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숟가락을 받아냈다. 캐티는 헤이즐의 그릇을 조금 가까이 밀어주고, 다시 브로콜리를 먹이려고 설득했다.
신시아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조금 긴장했었다. 두 엄마와 아이들이 사는 집에 손님으로 온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에 관해 어디까지 물어도 되는지, 괜한 질문으로 실례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머리를 말려주고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동안, 그런 생각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신시아는 브루클린에 있을 부모님을 떠올렸다.
오빠와 자신이 어렸을 때도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먹이고, 누군가는 닦고, 누군가는 잔소리하고, 누군가는 웃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 메이는 디저트로 피칸 파이를 내왔다.
파이를 한입 먹은 신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이는 직접 구우신 건가요? 너무 맛있어요.”
메이는 포크로 파이 끝을 조금 잘라 먹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뇨. 애 키우면서 어떻게 이런 걸 직접 만들겠어요? 파이는 사 온 거예요. 그래도 닭은 제가 굽고 삶았어요.”
신시아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구운 닭도 정말 맛있었어요. 리 부인은 음식을 참 잘하시네요.”
“고마워요. 그리고 그냥 메이라고 불러도 돼요.”
“아…… 네. 메이 씨.”
캐티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파이를 씹었다.
“그렇지? 메이는 뭐든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물이 좋아.”
메이는 캐티를 흘끗 보았다.
“당신이 만드는 음식도 나쁘지 않아. 간이 세서 문제지만.”
“……난 루이지애나 사람이야.”
“그래서 말했잖아. 간이 세다고.”
신시아는 포크를 입에 문 채 웃음을 참았다.
저녁 식사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캐티는 낡은 티셔츠와 조거 팬츠 차림이었다.
그녀는 젖은 수건을 빨래바구니에 던져 넣으며 물었다.
“신디. 이제 샤워해. 근데 갈아입을 옷은 있어?”
신시아는 자신의 백팩을 뒤적였다.
“네. 여기요.”
그녀가 꺼낸 것은 노란색에 검은 줄이 들어간 트랙 수트였다.
캐티는 그것을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게 뭐야.”
신시아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갈아입을 옷입니다.”
“아니, 그건 브루스 리 츄리닝이잖아.”
“미즈 생클레어께서 주셨어요.”
캐티는 신시아 손에 들린 노란 트랙 수트를 다시 보았다.
“……그 아줌마 취향도 참 희한하지.”
메이가 레오의 옷에 묻은 마른 밥알을 떼어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루이스 씨라면 그럴 것 같긴 하네. 안 그런 것 같아도 유쾌하잖아.”
신시아는 손안의 트랙 수트를 내려다보았다. 노란 천은 거실 조명 아래서 쓸데없이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캐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디. 너를 킬 빌 코스프레하는 여자로 만드는 그 옷이 마음에 들어?”
신시아는 잠시 생각했다.
“네. 어쩐지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캐티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욕실을 가리켰다.
“욕실 비었어. 샤워해.”
노란 츄리닝 차림으로 나온 신시아를 보고, 헤이즐과 레오 남매는 깔깔거리며 박수를 쳤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것뿐인데, 그것만으로 재미있다고 웃는 아이들을 보니 신시아는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매트 위에 앉아 블록 쌓기 놀이를 조금 해주다 보니, 벽시계는 어느새 밤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들은 조금씩 눈이 감기면서 몸이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캐티는 ‘잠자러 가자’는 말도 없이 그냥 레오를 안아 들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메이가 헤이즐의 손을 붙잡고 따라 들어가면서 신시아에게 낮게 말했다.
“거실에 편하게 있어요. 아니면 손님방에서 먼저 주무셔도 돼요.”
거실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신시아는 정말 먼저 자도 되는 건가 싶었다.
거실 매트 위에 떨어진 원목 블록들을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통에 담아 넣은 뒤, 신시아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캐티 피셔 씨의 집에서 잡니다. 저녁 식사도 대접받았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연락할게요.]
잠시 뒤, 엄마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 피셔 씨와 부인이 나온 영상을 우리도 봤다. 재밌는 사람들이더구나. 잘 자고 내일 이야기하자.]
신시아는 눈을 깜빡였다.
[영상이요? 전 못 봤는데.]
[너희 밴드 채널에 있는 영상 말이다. 네가 못 봤다니 그게 더 놀랍구나. 밴드에 관한 것이라면 다 찾아봤을 줄 알았는데. 링크 보내줄게.]
곧이어 엄마가 링크 두 개를 보내주었다.
지역 토크쇼 출연 장면을 짧게 편집해 올린 영상들이었다.
신시아는 백팩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첫 번째 링크를 열었다.
<0028 캐티 브레이크 더 쇼>
그 영상은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020년 1월, 뉴올리언스의 한 지역 방송 토크쇼에서 녹화된 것이었다.
화려한 글리터 메이크업에 반짝이는 무대용 드레스를 걸친 리디아, 캐티, 루이스. 당시의 새틴 크레센트는 3인조였다.
세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진행자와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진행자인 백인 남성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과장된 놀라움을 표현했다.
“여러분, 오늘 밤은 정말 놀랍습니다. 방금 새틴 크레센트의 트럼페터, 캐티 피셔 양이 이 자리에서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그것도 여성분과 말이죠. 우선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진행자가 박수를 유도하자 객석에서도 작은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당신이 레즈비언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하하! 엄밀히 말하면 전 레즈비언은 아니에요. 남자 애인과도 연애한 적이 있으니까요.”
“오. 그렇다면 당신은…….”
“세상에서는 저 같은 사람을 바이섹슈얼이라고 부르더군요.”
캐티의 거침없는 대답에 진행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렇군요. 스스로의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하신 적은 없으셨나요?”
“크게 고민하진 않았죠. 생각해보세요. 제가 얼마나 열린 사람인데요? 남자와도, 여자와도 모두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진행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 예…….”
캐티는 킥킥 웃으며 덧붙였다.
“인종도 안 가려요.”
“어…… 어우…… 대, 대단하시네요. 그러니까 다 받아주시는 겁니까?”
“어?! 대니얼! 방금 그 질렸다는 듯한 표정은 뭐예요? 내가 그렇게 문란해 보여요?!”
캐티가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자, 양옆의 리디아와 루이스가 동시에 그녀의 팔을 붙잡고 끌어내렸다. 진행자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문지르는 척했다.
“아…… 아뇨.”
“내가 양성애자라고 해서 문란한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애초에 내가 추구한 건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이지, 무책임한 난교가 아니라고!”
“앉아. 앉아.”
리디아가 팔을 잡아당겼다. 반대편에서 루이스도 거들었다.
“앉으세요.”
캐티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짐짓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소년원 나왔던 건 아까 말했죠. 거기서 갱스터 남친이 위험한 병에 걸렸다는 편지를 받고, 자기도 감염된 거 아닌가 공포에 떠는 여자애들을 봤어요.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아요?”
객석의 웃음이 잠시 가라앉았다.
캐티는 방청객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성생활에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그렇죠?”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목소리와 박수가 나왔다.
캐티는 가슴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난 아무에게나 내 몸을 허락하지 않았어!”
“어, 음.”
옆자리에 앉은 리디아가 이마를 짚었다.
“오…… 캣. 플리즈…….”
“오직 내 마음에 드는 멋진 사람들만이 나에게 이걸 할 수 있었어!”
캐티는 혀를 내밀더니 낼름낼름 움직였다.
“캣!”
루이스가 다급히 캐티의 입을 막았다.
진행자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황급히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자, 여기서 광고 나갑니다. 채널 고정하시고, 캐티 피셔 양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영상에는 당시의 중간광고까지 그대로 붙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새틴 크레센트의 세 재즈 히로인이 출연한 지역 브루어리 광고였다.
광고 속 리디아와 루이스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지막으로 광고 속 캐티는 입술에 묻은 맥주 거품을 혀끝으로 날름 핥더니, 과장된 요염함으로 속삭였다.
“Oh, Feeling Good~”
요염하게 보이기 위한 노력이 지나쳐서 오히려 웃기기만 했다.
15초짜리 광고가 끝나자 카메라는 다시 스튜디오를 비췄다.
캐티는 여전히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리디아와 루이스는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진행자는 입을 열었다가 웃음이 새어 나와 다시 다물었다.
“레로레로레로~”
진행자가 결국 외쳤다.
“캐티! 부인분에게 이 방송 보여줄 수 있어요? 부인분도 캐티가 이러는 거 알아요?”
“뭔 소리임? 이거 스캣임.”
캐티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프레디 머큐리도 리로레로레로링 했잖아요.”
객석 어딘가에서 짓궂은 여성 팬 하나가 외쳤다.
“저한테도 해주세요!”
“그럼 우리 마누라 허락 받고 와.”
박수와 휘파람이 터졌다.
캐티는 아직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레몬맛 크림을 미리 준비하는 편이랍니다.”
객석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뒤늦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오우…….”
“으윽…….”
리디아가 거의 비명을 질렀다.
“캣! 이 변태! 멍청아! Kat! You pervert! Idiot!”
루이스도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I’m sorry about her! 그녀에 대해서는 제가 사과할게요!”
만일 지역 브루어리 사장이 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면, 새틴 크레센트와의 광고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캐티는 아직도 폭주 중이었다.
“제가 와이프랑 하는 건 뭐, 별거 없고요.”
캐티는 소파 위에서 눈을 치켜뜨더니 양팔을 뒤집어진 개구리처럼 벌렸다.
“어읍. 어어어읍. 오우우우우읍. 오호호호호우.”
과장된 개구리 울음소리였다.
진행자는 다음 질문을 두 번이나 시작했다가 실패했다. 세 번째에는 캐티를 보지 않고 큐카드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리디아 콜먼 씨께서는 성소수자 구성원을 밴드 멤버로 받아들이는 일에 편견이 없으셨던 거군요.”
리디아가 대답했다.
“방파제에서 만나 영입을 제안하자마자 본인이 그 사실을 대뜸 밝히더군요. 저는 그녀의 성적 지향을 원한 게 아니라, 그녀의 소리를 원했습니다.”
“응. 리디. 넌 내가 내는 개구리 소리를 원했던 거야. 어읍, 어어어후우. 으으음, 필링 쏘 굿. 어우우.”
진행자의 큐카드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리디아는 캐티를 외면한 채 차갑게 말했다.
“그녀가 이런 이상한 사람인 건, 그녀가 퀴어라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퀴어들은 다 저렇다는 잘못된 편견이 생길 뻔했죠.”
진행자는 큐카드를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겨우 말했다.
“……광고 나갑니다. 채널 고정…… 푸흐흐하하……. 해주세요…….”
다시 광고.
광고 속 캐티 피셔가 맥주잔 위의 거품을 혀끝으로 레로레로 핥더니, 카메라를 향해 윙크했다.
“필링 쏘 구우우웃.”
“엄마. 대체 뭘 본 거야.”
신시아는 멍한 얼굴로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그때 아이들 방 안쪽에서 갑자기 짧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헤이즐의 울음인지 레오의 울음인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쉬쉬쉬쉬.
캐티와 메이가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도 들렸다.
<0029 메이 룰 더 쇼>
방 안에서 아이가 칭얼대는 동안, 신시아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가만히 기다렸다.
캐티와 메이가 쉬쉬쉬쉬 소리를 내며 달래자, 칭얼대는 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거실이 다시 조용해진 뒤에야 신시아는 두 번째 링크를 열었다.
다음 영상은 2023년의 것이었다.
같은 지역 방송국의 심야 토크쇼였다. 다만 이번에는 새틴 크레센트 멤버 전원이 아니라, 캐티와 메이 두 사람만 게스트로 초빙되어 있었다.
진행자가 웃으며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메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냥…… 옆집에 사는 흑인 아가씨가 너무 위태위태해 보여서요.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밥도 챙겨주고, 살림도 좀 봐주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됐습니다.”
객석에서 낮은 웃음이 번졌다.
“처음부터 연인으로 발전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전혀요. 저는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캣 이전에는 연애 경험 자체가 없었어요. 생애 첫 섹스도 캣이랑 했고요.”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오우우우—”
캐티가 당황한 얼굴로 메이를 보았다.
“메이.”
메이는 차분하게 돌아보았다.
“사실이잖아.”
진행자가 웃음을 참으며 다시 물었다.
“연애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까?”
“스탠퍼드 경제학부에 입학하고, 하루 다섯 시간씩 자면서 공부했거든요.”
객석에서 감탄과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진행자는 분위기를 타고 조금 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잠자리에서는 주로 어느 쪽이 먼저—”
캐티가 바로 주먹을 불끈 들었다.
“대니얼! 오늘 나 사고 치게 하지 말아요.”
진행자는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그때 메이가 안경을 살짝 밀어 올렸다.
“제가 먼저 덤벼듭니다.”
짧은 정적 뒤에 웃음이 터졌다.
캐티는 들었던 주먹을 내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오, 메이. 제발.”
진행자는 겨우 숨을 골랐다.
“메이 씨 부모님께서는 두 분 결혼하실 때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니까 별말은 안 하시더라고요. 아니, 정확히는 별말을 안 하시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별말 안 하고 있습니다.”
메이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인생에서는 부모님의 인정이 아주 중요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객석에서 작은 박수가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랑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메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전과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면 그건 회계 항목이죠. 제가 늘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회계와는 다를 테니까요.”
객석에서 다시 부드러운 박수가 흘러나왔다.
진행자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아주 멋진 답변이군요. 그렇다면 두 분이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데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우머나이저요.”
진행자의 미소가 멈췄다.
캐티는 천천히 메이를 돌아보았다.
“……오, 메이.”
메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 손가락은 기계를 이기지 못하더군요?”
진행자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잃었다. 객석에서는 누군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연거푸 두드리고 있었다.
메이는 태연하게 진행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이제 미스터 맥우드의 밤생활도 알려주시죠?”
“어…… 저는 싱글입니다.”
“그렇다면 실리콘 원통이 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뒤로 기대었다.
“오! 이렇게 보복당하다니. 제가 진 것 같습니다.”
메이는 고개를 저었다.
“보복이요? 아니에요. 혼자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실리콘 원통을 사용해보세요.”
“그만! 이제 항복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두 손을 들자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메이 리. 이제 보니 당신이야말로 재즈 소울에 가장 맞닿은 사람이었군요.”
“음. 저는 재즈 소울은 모르겠습니다만.”
메이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가위 모양으로 만들었다.
캐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메이.”
메이는 양손의 손가락을 서로 교차시켰다.
“재즈하는 여자에 맞닿은 건…… 맞죠?”
캐티는 벌떡 일어나 세트 뒤쪽으로 도망쳤다.
진행자는 의자에서 웃다가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거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이들 방에서는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시아는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저녁 식탁에서 피칸 파이는 사 온 거라고 태연하게 말하던 사람이, 화면 속에서는 뉴올리언스 일부 가정의 심야 거실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캐티는 그 사람을 피해 세트 뒤로 도망쳤다.
신시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작게 중얼거렸다.
“최상위 포식자는…… 메이 씨였구나.”
아이들이 자는 방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먼저 메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신시아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댔다. 뒤이어 캐티가 몸을 낮춘 채 문틈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거의 발끝으로 걷다시피 복도를 지나 거실로 나왔다.
메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문이 딸깍 소리도 내지 않고 맞물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벽시계를 보았다.
밤 열 시.
메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았다.”
신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두 분도 이제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메이는 웃음을 참듯 입꼬리를 올렸다.
“어린 동생 없죠? 조카라든가.”
“네.”
“애들이 자면, 그때부터 간신히 부모들 시간이 시작돼요.”
“아…….”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캐티가 피식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슬쩍 내보였다.
“아까 울음소리 났지? 레오가 자려고 하다가 응가를 싸서 그래.”
캐티는 대충 뭉친 기저귀를 들고 있었다.
메이가 바로 말했다.
“캣. 손님 앞에서 애 기저귀 들이밀지 마.”
“응. 처리하고 올게.”
캐티는 기저귀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용물을 변기에 털어내고 물을 내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캐티가 나왔다. 그녀는 기저귀를 돌돌 말아 붙어 있는 테이프로 고정한 뒤,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 입구를 비틀어 묶었다.
신시아는 소파에 앉은 채 코끝을 아주 조금 찡그렸다. 스스로도 그런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이 민망했는지, 곧장 얼굴을 바로 했다.
“맥주 마시기 전에 기저귀 폭탄부터 덤스터에 던지고 올게.”
메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 나가서 전자담배 피우려는 거잖아.”
“……뭐, 겸사겸사. 애들이 있는 집 안에서 피울 순 없잖아.”
캐티는 현관 쪽으로 걸어가며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그래. 다녀와.”
메이는 캐티를 보내고 거실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아이들 방 쪽으로 찬바람이 세게 들어가지 않는지 확인한 뒤, 소파에 털썩 앉아 눈을 감았다.
거실에 찬 공기가 얇게 지나갔다. 기저귀 냄새는 조금씩 사라졌다.
검은 비닐봉지는 단지 뒤편 덤스터로 추방되었다.
밖에서 돌아온 캐티가 손을 씻고 창문을 다시 닫으며 물었다.
“아직 냄새 나지?”
신시아는 대답을 고르는 듯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애기 기저귀니까…… 그런 거죠?”
캐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지.”
그 말투가 너무 담담해서, 신시아는 오히려 더 할 말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