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 축제 예행연습>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이 호수 북쪽의 드빌리 가문 사유지 도로 위를 달렸다.
신시아는 창밖의 풍경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잘 깎인 잔디밭과 긴 진입로, 스페니시모스가 흔들거리는 오래된 참나무, 낮은 담장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보안 게이트를 빠져나와 도로가 넓어지자 풍경은 비로소 조금씩 평범해졌다.
주유소, 약국, 커피숍, 픽업트럭, 주말 외출에 나선 가족들의 차.
그러나 그 평범함조차 신시아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된 고향 브루클린의 골목과는 달랐다.
모든 것이 낮고 넓고, 차를 타지 않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링컨은 폰차트레인호 코즈웨이 위로 올라갔다.
멕시코만의 바닷물과 강과 습지의 민물이 뒤섞이는 광활한 회색 호수. 두꺼운 구름 아래에서 물과 하늘의 경계가 흐렸고, 아침빛이 잔물결 위에서 희미하게 부서졌다.
어제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어서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신시아는 저도 모르게 창가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다리가 정말 길어요.”
그녀가 작게 말했다.
루이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처음엔 다들 그렇게 느껴요.”
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의 다리들은 물 위에 잠깐 놓인 도시의 길이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다리는 도시의 길이라기보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처럼 보였다.
다리를 건너 뉴올리언스 쪽에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늘어났다.
관광객의 렌터카처럼 보이는 SUV, 축제 장비를 실은 밴, 작업용 픽업트럭이 링컨 옆을 지나갔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임시 표지판과 주황색 콘이 서 있었다. 도로 보수 차량 한 대가 느리게 움직였고, 슈퍼돔 방면을 알리는 표지판 아래로 경찰차가 지나갔다.
아직 축제의 인파는 없었지만, 이 도시는 이미 손님을 맞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세인트클로드 애비뉴 쪽으로 접어들자 마디그라의 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은 가게 창문마다 보라색, 초록색, 금색 장식이 걸리기 시작했고, 어떤 베이커리 앞에는 킹 케이크 예약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닫힌 바 앞에는 맥주 상자가 쌓여 있었다. 셔터를 반쯤 올린 직원은 호스로 축축한 보도를 씻고 있었다.
그때 앞쪽 교차로에서 경찰차 한 대가 차선을 비스듬히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링컨은 부드럽게 멈췄다.
휘태커 씨는 운전대를 가볍게 잡은 채 앞쪽을 바라보았다.
“세인트클로드 쪽에 임시 통제가 있습니다.”
루이스는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기엔 늘 그렇죠.”
신시아는 앞유리 너머로 길게 시선을 던졌다.
‘……뭐 하는 거지?’
경광등이 흐린 겨울 아침빛 속에서 느리게 돌았다.
흑인 경관이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차량들을 멈춰 세우고 있었다.
동료인 백인 경관은 무전기를 든 채 교차로를 지나가는 행렬 쪽을 돌아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휘태커 씨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흑인 경관에게 정중히 물었다.
“경관님, 통제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경관은 행렬 쪽을 한 번 돌아보고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차분히 대답했다.
“십 분쯤이면 끝납니다. 마지막 행렬만 지나가면 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휘태커 씨는 손을 들어 보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뒷좌석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
“돌아갈까요?”
루이스는 조용히 말했다.
“아뇨. 신디에게 이 행렬을 보여줘야겠어요.”
“네?”
신시아가 되묻기도 전에 루이스는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휘태커 씨. 잠시 내려서 보고 올게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경관은 경찰차 옆의 임시 정차 공간을 가리켰다.
휘태커 씨는 링컨을 그쪽으로 옮겨 길가에 안전하게 세웠다.
루이스가 문을 열었다.
“신디. 잠깐 나 따라서 내려봐요.”
신시아는 얼떨결에 루이스에게 손목을 잡혀 차에서 내렸다.
경관은 두 사람을 보고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루이스는 그가 가리킨 인도 쪽 통행로로 신시아를 이끌었다.
경찰차가 막아 둔 차도 옆을 빠져나가 보행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임시 바리케이드 옆을 지나 구경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인도 가장자리로 파고들었다.
신시아는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지금…… 우리 밴드 연습실로 출근 중 아니었나요?”
루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십 분 동안 잠시 구경해보세요.”
루이스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도로 한복판에서 브라스밴드가 트럼펫과 트롬본, 수자폰의 힘찬 합주를 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아, 이것이 마디그라 퍼레이드인가요?”
신시아가 물었다.
루이스는 행렬 쪽을 보았다.
“정식 퍼레이드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먼저 몸을 푸는 중이죠.”
동네 워킹 크루와 상점회가 허가를 받아 마련한 작은 카니발 개막 행렬이었다. 정식 퍼레이드라기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축제의 예고편에 가까웠다.
깃털 날개를 단 응원복 차림의 남녀들이 브라스밴드의 짧은 반주에 맞춰 발을 굴렀다.
흰색 부츠가 아스팔트를 두드리고, 금빛 술 장식이 흐린 빛을 받아 흔들렸다. 그 뒤에서는 해적 분장을 한 동네 주민들이 스펀지 칼을 휘두르며 달리고 있었다.
피터팬 복장을 한 남자가 과장되게 도망쳤고, 후크 선장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그 뒤를 쫓았다. 둘 다 진심으로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둘 다 쓸데없이 열심이었다.
그 뒤를 픽업트럭이 견인하는 해적선 모양의 퍼레이드 차량이 천천히 굴러갔다.
차량 위에는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남녀노소가 올라타 있었다. 그들은 행렬을 구경하려고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여러 가지 물건을 집어 던졌다.
퍼레이드 차량 위의 백발 할머니가 외쳤다.
“Where y’all from, baby?”
그녀는 왕관 모양 플라스틱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한 손에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길가의 외지인들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새끼손가락 크기의 초코바들이 공중을 날았다.
하나는 관광객의 모자에 맞고 떨어졌고, 하나는 경찰차 보닛 위에 가볍게 튕겼다. 경찰은 그것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퍼레이드 차량 위의 다른 주민들도 금색, 초록색, 보라색 광택이 번쩍이는 싸구려 플라스틱 구슬 목걸이와 작은 스낵 봉지를 던졌다.
미니 감자칩 한 봉지가 길가에 서 있던 남자의 가슴팍에 퍽 하고 맞았다. 남자는 그것을 받아 들고 유쾌하게 웃었다.
“Welcome to New Orleans!”
감자칩 봉지를 던진 여인이 외쳤다.
신시아는 웃어야 할지, 놀라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러나 그 무질서한 풍경에는 외지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밀어내지 않는 느슨한 환대가 있었다.
아까 초코바를 던지던 할머니는 이번에는 반짝이는 동전 같은 것들을 한 줌 집어 들었다.
“Doubloons! Get your doubloons, baby!”
보라색과 금색으로 착색된 얇은 토큰들이 회색빛 아래서 희미하게 번쩍이며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길가의 아이들이 그것을 줍기 위해 와르르 몸을 낮췄다.
신시아도 엉겁결에 자신의 운동화에 부딪친 토큰 하나를 주워 들었다.
신시아는 눈을 깜박였다.
“더블룬? 이건 돈이에요?”
루이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마디그라 기념품이에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돈보다 열심히 주워요.”
신시아는 더블룬을 흐린 빛에 기울여 보았다. 보라색과 금색, 초록색으로 착색된 얇은 알루미늄 조각이었다.
가장자리는 싸구려 장난감처럼 조금 거칠었고, 표면에는 플뢰르 드 리스 문양과 함께 Happy Mardi Gra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시아는 맥이 빠져 중얼거렸다.
“이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요.”
루이스는 그 말을 듣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을 수 있죠.”
“네?”
“쓸모 있는 건 결국 어딘가에 쓰이죠. 먹을 건 먹고, 돈은 쓰고, 좋은 물건은 계속 쓰다가 닳고. 하지만 그런 건 쓸 데가 없으니까 남아요. 서랍 안이나, 낡은 쿠키 깡통 안이나, 오래된 재떨이 안에.”
루이스는 행렬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 보면 기억만 남아 있죠. 언제 받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기억이요.”
신시아는 잠시 더블룬을 들여다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작은 축제 행렬이 지나가고, 두 사람은 다시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로 돌아왔다.
“즐거우셨습니까?”
휘태커 씨가 백미러를 통해 신시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 네…… 조금요.”
통제가 풀리고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유리에 굵은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그러나 비는 금방 그쳤다.
신시아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플라스틱 목걸이 하나가 길가의 전깃줄에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오전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퍼레이드 기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는 누군가가 과자를 던지고, 모르는 사람에게 어디서 왔냐고 외치고 있었다.
뉴올리언스는 축제 연습도 축제처럼 하는 도시 같았다.
신시아는 주머니 속의 얇은 더블룬을 손끝으로 한 번 눌러 보았다.
<0024 여권 만들어 둬>
오전 11시 48분.
검은색 링컨이 세인트클로드 지구에 있는 어느 단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새틴 크레센트가 임대하고 있는 연습실이었다.
휘태커 씨가 차량의 문을 열어주자 신시아와 루이스는 링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링컨을 몰고 떠나는 휘태커 씨에게 인사했다.
길가에는 리디아의 붉은색 7세대 콜벳이 먼저 와서 주차되어 있었다. 그러나 캐티의 녹색 클래식 피아트 500은 보이지 않았다.
루이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신시아를 돌아보았다.
“캣은 지각인가 보네요. 우리 먼저 준비할 수밖에.”
이제 연습실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자동차의 것이 아닌 엔진 소리가 황급히 울려 퍼졌다.
캐티가 오렌지색 베스파 스쿠터를 몰고 달려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 모두 굿모닝! 나 안 늦었지? 응?”
루이스가 시계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11시 48분이네요. 안 늦으셨어요.”
캐티는 스쿠터의 시동을 끄고 헬멧을 벗었다.
사방으로 뻗친 그녀의 백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대충 쓸어 넘겼다.
그 얼굴에는 ‘늦지 않았다’는 승리자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역시 베스파는 위대해. 오늘처럼 피아트가 시동 걸리기를 거부하는 날에는 이 녀석이 영웅이야.”
루이스는 오렌지색 베스파를 한 번, 캐티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다.
“안 늦으신 건 맞는데, 머리는 늦게 일어나신 사람 같네요.”
“아니, 이건 패션이야.”
“아. 그렇군요.”
신시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이 밴드의 멤버들이 주고받는 농담과 핀잔이 어디까지 진담이고 어디부터 장난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루이스의 말투가 차분할수록 캐티가 더 정확하게 펀치를 얻어맞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연습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리디아는 먼저 출근해 라운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노트북과 일정표, 몇 장의 공연 계약서 사본, 형광펜으로 표시된 달력이 펼쳐져 있었다.
리디아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왔군.”
캐티가 당당하게 양손을 펼쳤다.
“나 오늘 안 늦었어.”
“알아.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했지.”
리디아는 피식 웃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루이스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 합주 전에 일정부터 정리하고 계신 거죠?”
“그래.”
리디아는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다음 달인 2월.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슈퍼볼 때문에 도시 전체가 먼저 한 번 뒤집혀.”
리디아는 달력의 2월 9일을 가리켰다. SUPER BOWL LIX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큰 무대보다 리허설과 작은 쇼 참가 위주로 활동할 테니까 큰 어려움은 없어. 다만 교통이 문제니까 이동 동선을 잘 확인해야겠지. 슈퍼볼이 열리는 주말에는 호텔, 클럽, 행사장, 어디로 가든 정체가 있을 테니까.”
신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다음이 마디그라인가요?”
리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볼 때문에 일부 퍼레이드 일정이 조정됐을 뿐, 마디그라 시즌 자체는 이미 시작됐어. 지금도 그 기간 중이야.”
리디아는 달력을 넘겼다.
“올해 마디그라가 절정에 이르는 3월 첫 주, 우리에겐 일정이 연달아 잡혀 있어. 재즈클럽 두 곳. 호텔 라운지에서 열리는 갈라 하나. 지역 라디오 방송의 스튜디오 라이브 하나. 기업체 프라이빗 파티 두 건. 그리고 퍼레이드 차량 위에서 브라스밴드와 함께하는 무대 하나.”
신시아는 달력 위에 형광펜으로 표시된 줄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일정표라기보다 이동 명령서처럼 보였다.
“신시아.”
“네.”
“따라올 수 있겠니?”
신시아는 저도 모르게 등을 곧게 세웠다.
“Yes, ma’am. I can.”
그 대답이 너무 빠르고 반듯해서 캐티가 옆에서 웃음을 참았다.
“신디. 그렇게 군대처럼 대답 안 해도 돼.”
“Ah, sorry, ma’am.”
“사과도 군대 같아.”
“그리고 우리 커리어에 정말 중요한 일정.”
리디아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 세 사람에게 보였다.
이메일 창이었다.
신시아는 문장을 빠르게 훑어보려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 하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Montreux Jazz Festival 2025.
리디아가 말했다.
“7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공연. 아직 최종 계약서가 남아 있지만, 출연 확정 메일은 받았어. 우리가 스위스에 가서 공연하는 것이 거의 확정됐다는 뜻이야.”
잠시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캐티가 먼저 휘파람을 불었다.
“오. 진짜로? 작년에 우리가 플로리다에서 참여했던 성과 덕분인가?”
“그래. 그때 마이애미 무대를 본 본행사 관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고, 이번 스위스 공연으로 이어진 거야. 아직 페스티벌 라인업이 공개되기 전이니까 외부에는 말하지 마. 특히 캣.”
리디아가 엄하게 캐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캐티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왜 나를 봐?”
“넌 말 트고 지내는 주변 뮤지션들이 많아서 소문이 금방 퍼져.”
“억울하지만 반박은 못 하겠네.”
루이스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좋은 소식이네요.”
신시아는 여전히 노트북의 이메일 화면에 눈이 박혀 있었다.
“몽…… 트뢰?”
신시아는 그 낯선 울림의 단어를 중얼거려 보았다.
옆에서 루이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스위스에서 열리는 유럽의 커다란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요?”
“아…… 네. 이름은 들어봤어요.”
“작년에 미국판 행사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마이애미가 처음 열렸답니다. 우리는 그 마이애미 무대에 섰었고, 그 덕분에 올해는 스위스 몽트뢰에서 공연하게 된 거예요.”
리디아가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신디. 여권 만들어 둬.”
“아, 그…… 저, 아직 없는데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갑자기 신시아의 머릿속으로 여권, 국제선, 장비 수하물, 스위스라는 말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녀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러니까 만들어 두라는 거야. 급하게 만들면 귀찮아져. 부모님께도 미리 말씀드리고. 7월이라고 해도 준비는 지금부터 해야 하니까…… 그때는 방학이겠지만 학교 일정도 확인해 둬.”
신시아는 입을 조금 벌린 채 리디아를 바라보았다.
“제가…… 같이 가는 건가요?”
캐티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안 가면 베이스는 누가 쳐?”
루이스가 낮게 웃었다.
“신디가 우리 밴드 베이시스트잖아요.”
리디아는 신시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너도 같이 간다. 스위스로.”
그 말은 크지 않았다.
신시아는 놀라움을 간신히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만들겠습니다. 여권.”
“좋아. 일정 설명 끝.”
리디아는 신시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캐티가 손을 들었다.
“그럼 우리 막내 해외 진출 기념으로 점심은 뭘 먹지?”
루이스가 말했다.
“캣. 아직 오후 12시 12분이에요.”
“월드클래스 뮤지션은 점심 메뉴를 미리 생각해야 해.”
리디아는 노트북을 닫았다.
“1시에 먹기로 하고, 연습 먼저.”
캐티는 과장되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 밴드는 인간성이 부족해.”
방음실로 들어간 신시아는 자신의 베이스 케이스를 들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악기가 갑자기 전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버겁지는 않았다.
“이제 오늘 연습할 목록 점검할게. 마디그라용 메들리 편곡 세 곡, 몽트뢰 제출용 라이브 레퍼런스 두 곡. 신시아의 베이스 솔로 파트도 조금씩 늘리는 방향으로 편곡하고…….”
리디아의 말을 들으며 신시아는 케이스에서 프렛리스 베이스 기타를 꺼냈다.
스트랩을 연결해 어깨에 걸고 코드를 앰프에 꽂으며 신시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해보자. 가 보자.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처음으로 이 정신없는 어른들 사이에 자신이 정말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