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 좋은 아침, 나쁜 식단>

겨울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들어와 신시아의 눈꺼풀을 두드렸다.

신시아의 눈이 떠졌다.

‘어? 여긴 어디지?’

그녀는 잠시 동안 멍하니 천장의 베이지색 실크 벽지를 바라보았다.

‘아! 나 어제 미즈 생클레어의 친정집에서 잤구나.’

신시아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아이폰을 확인했다.

오전 9시 40분.

“아. 또 늦잠 잤네…….”

부끄러워진 신시아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밝은 회색 원피스 정장을 입은 채 방문 앞에 서 있던 제니퍼 플린과 마주쳤다.

플린 양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신시아 아가씨.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나요?”

신시아는 문득 자기 뒤에 진짜 아가씨가 따로 서 있는지 확인했다.

“아가씨라면…… 저요?”

“네. 신시아 아가씨.”

이제 호칭에 대해서는 신시아 쪽에서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신시아가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버벅대는 사이, 플린 양이 너무나도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침 식사 드셔야죠? 식사는 원하시는 시간에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근데 지금 9시 40분이라서요. 저 완전 늦잠 잤거든요. 그냥 지금 먹어도 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1층 조찬실로 모실까요?”

‘……조찬실?’

이 집에는 아침 식사만을 위한 방이 실제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신시아는 목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키고 플린 양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조찬실에는 밴더발트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단정한 단발. 진회색 원피스 정장. 흰 치자꽃 브로치. 검은 로퍼.

밴더발트 부인은 전날과 똑같이 자상한 얼굴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신시아 아가씨. 잘 주무셨나요?”

“네. 네. 아주 잘 잤어요!”

신시아는 당황해서 괜히 목소리가 커졌다.

이 집에 가사와 살림을 총괄하는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들이 아침에도 이렇게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주방 쪽 통로에서 페데르손 씨가 활기차게 걸어 나왔다.

회색 정장. 검은 옥스퍼드 구두. 반듯한 자세.

“좋은 아침입니다, 신시아 아가씨. 마침 셰프께서 아직 주방에 계십니다. 원하시는 조찬 메뉴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 저기…… 셰프가 오셨어요?”

“예.”

신시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페데르손 씨와 밴더발트 부인, 플린 양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셰프가 출근해서 아침 식사를 만들어 주는 집에서는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 걸까?’

신시아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 페데르손 씨가 따뜻하게 웃으며 물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저 그냥 시리얼에 밀크 부어 먹을게요.”

그러자 페데르손 씨가 손에 들고 있던 아이패드에 뭔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믹스베리 그래놀라로 준비할까요?”

“네?”

“밀크는 저지종 우유, 저지방 우유, 산양유, 귀리유, 아몬드유가 있습니다.”

신시아는 잠시 정지했다.

그리고 간신히 생각을 재가동했다.

“……생각해 보니까 여러분께서 주시는 대로 먹는 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페데르손 씨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셰프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시아는 안도했다.

‘간단한 식사. 그렇다면 시리얼과 토스트 정도겠지.’

그리고 10분 후, 신시아는 자신 앞에 놓인 그릇들을 바라보았다.

도기 볼에 담긴 믹스베리 그래놀라.

법랑 밀크 저그에 담긴 저지종 우유.

크리스털 볼에 담긴 계절 과일.

은제 달걀 받침 위의 반숙 달걀.

본차이나 접시에 오른 버터 크루아상.

작은 백자 그릇에 담긴 수제 딸기잼.

유리컵의 오렌지 주스.

로열 코펜하겐 찻잔의 커피.

신시아는 넋을 놓고 식탁을 바라보았다.

“이게 간단한 거예요?”

“예.”

페데르손 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복잡한 건 뭐예요?”

“그건 셰프께 여쭤보겠습니다.”

신시아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 괜찮아요! 정말 대단해요. 대단해요! 말만 하면 지금 당장 스시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시라…… 원하시면 준비시킬까요?”

“네?”

“도쿄 출신 이타마에가 근무하는 호텔에 연락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영업일이니 준비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뇨. 아뇨. 아뇨. 감사합니다.”

신시아는 얼른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저는 갑자기 그래놀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졌어요.”

신시아가 저지종 우유를 부은 그래놀라를 세 숟가락째 씹을 때였다.

복도 건너편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맑고 안정적인 쇼팽이었다.

그제야 신시아는 루이스를 떠올렸다.

“미즈 생클레어는 먼저 드셨지요?”

밴더발트 부인이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 주무십니다.”

“……네?”

이번에는 플린 양이 다시 말했다.

“루이스 아가씨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신시아는 복도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 쇼팽 피아노 소리는…….”

“클로디 도련님께서 치고 계십니다.”

“…….”

“오늘은 비교적 늦게 시작하셨습니다.”

신시아는 그래놀라를 한 숟가락 뜬 채 굳었다.

“클로디 도련님이 몇 살이시죠?”

“지난 10월에 여섯 살이 되셨습니다.”

“……아.”

신시아는 숟가락을 놓칠 뻔했다.

잠시 후, 신시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는 그 나이 때 숟가락으로 컵 두드리고 칭찬받았는데…….”

그때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보라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루이스가 난간을 짚고 비척비척 내려오고 있었다.

조찬실로 들어온 루이스의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무대와 공식 석상에서 보던 우아한 모습은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밴더발트 부인과 페데르손 씨, 플린 양이 한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러자 신시아도 엉겁결에 식탁 앞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으음…….”

루이스는 반쯤 감긴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그녀는 신시아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밴더발트 부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루이스 아가씨.”

“네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저 아이스크림 주세요.”

그 기상천외한 메뉴를 듣자, 신시아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굳었다.

밴더발트 부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안 됩니다.”

“뇌에 당이 필요해요.”

“식후에 드시죠.”

“저혈압에 저혈당이라 아침엔 머리에 피가 안 돌아가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더욱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밴더발트 부인은 단호했고, 루이스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만.”

“안 됩니다.”

“반 스쿱.”

“안 됩니다.”

그때 페데르손 씨가 태블릿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아, 참. 아가씨.”

“네에.”

“어젯밤에 컵라면을 드셨더군요. 그것도 국물까지 전부.”

루이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떻게 아셨어요?”

“주방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확인했습니다.”

“아, 나 이 집의 딸인데도 감시당하고 있었구나.”

“아닙니다. 재고 관리입니다.”

“거짓말.”

밴더발트 부인이 플린 양과 함께 루이스의 아침 식사를 내오며 말했다.

“제대로 된 식습관을 가지셔야 합니다, 아가씨.”

“저도 서른 넘었는데요.”

“예.”

“내년에 1학년이 되는 아들도 있는데요.”

“예.”

“그런데 어엿한 어른인 제가 왜 혼나는 거죠?”

“컵라면을 밤중에 드셨으니까요.”

루이스는 억울하다는 듯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신시아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0022 토요일 출근>

오전 10시 45분.

밴드 연습실로 출근할 준비를 마친 신시아가 백팩을 다시 둘러메고 1층으로 내려왔다.

현관 쪽에 서 있던 플린 양이 안내했다.

“휘태커 씨의 차량이 방금 정문 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준비하시죠.”

플린 양을 따라 신시아는 정원으로 나왔다.

그 순간, 눈앞을 가로질러 무언가가 휙 스쳐 지나갔다.

말벌인가 싶어 신시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현관 앞 꽃나무 사이를 오가며 공중에 멈춰 서는 작은 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벌새잖아.”

벌새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었다.

보스턴에서도, 브루클린에서도 가끔 보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흔한 새는 아니었지만, 꽃이 많은 여름 공원에서 운이 좋으면 마주치는 조그만 새.

문제는 지금이 1월이라는 점이었다.

신시아는 공중에 멈춰 선 벌새를 가리켰다.

“1월인데…… 아직도 미국에 남아 있다고요?”

눈이 동그래진 신시아 앞에서, 플린 양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뉴올리언스니까요. 매년 두세 마리 정도는 이 정원에서 겨울을 지냅니다. 그래서 설탕물을 급여하고 있습니다.”

플린 양은 정원수 가지에 매달린 설탕물 피더를 가리켰다.

벌새 한 마리가 그 앞에서 공중에 고정된 것처럼 떠서, 매우 성실하게 설탕물을 빨아 먹고 있었다.

“먹이가 충분하면 뉴올리언스에서 겨울을 버틸 수 있으니까요.”

“게으른 건지, 똑똑한 건지 모르겠네요.”

“물론 정말 게으른 건지, 아니면 뉴올리언스의 겨울이 마음에 든 건지는 새에게 물어봐야겠지만요. 다만 월동하는 개체는 소수입니다.”

플린 양은 온화한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며 웃었다.

“3월쯤 되면 더 많은 벌새들이 남쪽에서 하나둘 날아와서, 이 정원은 벌새들의 공항이 된답니다.”

플린 양은 그렇게 말하며 즐거워했다.

신시아는 나직이 읊조렸다.

“벌새 공항.”

“예. 입국장과 출국장이 동시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신시아는 벌새 한 마리가 설탕물 피더 앞에서 동료에게 새치기를 당하고 뒤로 밀려나는 광경을 보았다.

“……보안 검색은 없나 보네요.”

“그 부분은 아직 검토 중입니다.”

플린 양의 블랙유머도 만만치 않았다.

신시아가 겨울의 벌새로 흔들린 상식을 간신히 다시 붙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분수대 옆에서 클로디가 무언가의 갈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신시아는 눈을 비볐다.

“저것은…… 말?”

조랑말을 쓰다듬던 클로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시아를 보고 웃었다.

“제 친구, 나폴레옹이에요.”

신시아는 넋을 놓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정원에 말이라니…….”

“조랑말입니다.”

뒤따라온 페데르손 씨가 너무나 여유로운 미소로 정정했다.

“1918년에 드빌리 저택의 마구간은 차고로 개장되었고, 이제 말은 키우지 않습니다.”

신시아는 나폴레옹을 손가락질했다.

“하, 하지만 얘는 말이잖아요?”

“조랑말입니다.”

이번에는 어느새 나타난 밴더발트 부인이 품위 있게 정정했다.

신시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네. 얘는 조랑말입니다.”

“정확하십니다.”

짝짝짝.

밴더발트 부인과 플린 양, 페데르손 씨가 진심으로 칭찬하듯 박수를 쳤다.

신시아는 박수 받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박수를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클로디는 조랑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시아는 중얼거렸다.

“조랑말이 친구라니…… 나는 여섯 살 때 친구가 곰 인형이었는데…….”

“물론 클로디도 테디베어는 좋아하죠. 나폴레옹만 좋아하는 건 아니랍니다.”

등 뒤에서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이스가 선글라스를 쓰고 라벤더색 포멀 드레스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루이스는 아들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껴안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클로디. 오늘 하루 잘 기다릴 수 있지?”

“네. 마미. 연주 잘하고 오세요.”

모자가 포옹하는 동안, 부드럽고 조용한 바퀴 소리를 내며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이 분수대 옆에 멈춰 섰다.

휘태커 씨는 오늘도 거침없는 동작으로 차에서 내려와 정중하게 뒷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루이스 아가씨. 그리고 미스 레노스키.”

“굿 모닝, 미스터 휘태커.”

루이스는 휘태커 씨에게 손을 흔들었고, 신시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이제 우리 밴드 사무실로 출근하죠, 신디.”

루이스가 신시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신시아는 클로디와 세 명의 저택 관리사들, 그리고 조랑말과 벌새들에게 황급히, 그러나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람한테만 인사하면 돼요! 타세요!”

루이스는 신시아를 링컨의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차 안에 앉은 뒤에도 신시아는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클로디가 조랑말의 목을 껴안은 채, 멀어지는 링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신시아는 중얼거렸다.

“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아침에 조랑말을 쓰다듬을 일이 없는데…….”

루이스가 좌석에 몸을 파묻으며 말했다.

“대부분은 그렇겠죠?”

“그건 아시는군요.”

“저에게도 사회보편성에 대한 감각은 있어요.”

사회보편성에 대한 감각?

신시아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아침부터 아이스크림 달라고 해서 혼나셨잖아요.”

루이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건 사회보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 가정 문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