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멤버들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신시아는 빠르게 <새틴 크레센트>밴드에 동화되고, 뉴올리언스를 자신이 꼭 돌아와야 할 장소로 인식하게 된다.

<0010 수프 그릇 앞에서>

다음 날, 2025년 1월 11일 토요일 아침.

리디아가 사는 콘도미니엄.

손님용 방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눈꺼풀 위로 옅은 빛이 닿자, 신시아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녀는 충전 케이블이 꽂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한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9시 17분…!”

장거리 이동. 긴장. 오디션. 낯선 음식. 남부의 차가운 겨울비가 남긴 습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몸을 짓눌렀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늘어져서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아, 대표님께 완전 실례했다…!”

신시아는 허둥지둥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둘러 옷을 꿰어 입고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 정리했다.

그때 부엌 쪽에서 뭔가 맛있는 냄새가 흘러왔다.

신시아가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리디아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간소한 실내복 차림이었다. 왼손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국자를 잡은 채 조용히 냄비를 젓고 있었다.

“굿모닝, 신디. 아침은 먹어야지?”

신시아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늦잠 잤어요!”

리디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 오디션 본 애를 아침 일찍 깨우는 건 노동법 위반 같아서. 난 일찍 먹었단다.”

리디아는 식탁에 차려진 접시들을 가리켰다.

신시아는 버터를 바른 샌드위치와 머그잔에 담긴 커피 앞에 앉았다.

음식 앞에서 그녀는 두 뺨이 벌개진 채 중얼거렸다.

“…아침 식사… 제가 해도 됐는데요.”

리디아는 태연하게 웃었다.

“넌 어제 오디션 봤잖아. 그리고 집주인은 나야.”

리디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수프 냄비를 천천히 저었다.

창밖에서는 축축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의 비는 완전히 멎었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제법 남아 있는 날이었다.

신시아는 아직도 조금 긴장한 채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다.

리디아는 그런 신시아를 흘끗 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내가 그다지 좋은 어른은 아니라서.”

신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네?”

리디아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난 음악 산업이랑 쇼비즈니스에서 비열하고 이상한 꼴을 꽤 많이 봤거든.”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완전히 농담 같지는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리디아가 다시 현실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걸 계속 보다 보면 말이야. 처음엔 ‘난 저 사람들처럼 비열하게는 안 살아야지’ 했던 것도 조금씩 잊어버리게 돼. 그러다 보면 사람 인성도 나빠지고. 나도 어느 순간 내 전남편처럼…… 아니, 이 얘긴 그만하자.”

신시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리디아는 그런 반응에 익숙한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안심하렴. 내가 좋은 어른은 아니어도, 밴드 막내를 굶겨 죽이는 취미까진 없거든.”

그리고 리디아는 방금 막 떠낸 수프 그릇을 신시아 쪽으로 밀어주었다.

희고 묵직한 크림수프였다.

조개와 버터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신시아는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한 입 먹었다.

크림은 뜨겁고 묵직했다.

짭짤한 조개, 큼직하게 잘라 넣은 감자와 당근과 샐러리.

후추 냄새가 늦게 올라왔다.

“…맛있어요.”

리디아는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다행이네.”

그녀는 냄비 뚜껑을 비스듬히 덮었다.

“캐티는 내가 수프 만들면 맨날 감자가 너무 많다고 투덜대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신시아는 어쩐지 이 밴드가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 음….”

그녀는 숟가락으로 수프 안을 조심스럽게 저었다.

흰 크림 사이로 초록색 덩어리가 올라왔다.

“조개 크림수프에 원래 브로콜리가 들어가나요?”

리디아의 손이 멈췄다.

“아.”

그녀의 표정이 조금 엄격해졌다.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너도 그 말을 하는구나.”

신시아는 숟가락을 든 채 멈칫했다.

리디아는 조용히 말했다.

“남기지 말고 꼭꼭 씹어 먹으렴.”

<0011 다시 뉴욕으로>

뉴올리언스 웨어하우스 디스트릭트에 있는 리디아의 집은 오래된 벽돌 건물을 재활용한 콘도미니엄이었다.

건물 전체는 19세기 창고를 개조한 것이었고, 리디아가 입주한 유닛은 4층에 있었다.

개인 침실 하나와 손님 침실 하나, 작은 음악 작업방.

한쪽 벽면의 붉은 벽돌을 덮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킨 거실.

중앙 정원의 공용 수영장 쪽을 내려다보는 창을 갖춘 공간이었다.

손님방 안의 신시아는 세안을 하고, 토너와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빗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는 동안 거실에서는 리디아가 어딘가에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베이스 기타용 케이스가 필요해요. 네. 그걸 받을 사람이 14시 20분 비행기를 타니까, 11시까지 갈게요.”

신시아가 깜짝 놀라 방에서 나왔다.

“대표님, 저 악기 케이스 있어요!”

리디아는 통화를 끊은 후, 신시아를 흘겨보며 쓴웃음을 내비쳤다.

“그래. 잘도 그런 허술한 긱백에다가 악기를 넣어서 비행기를 탔더구나? 하지만 이제부터 투어를 돌 사람이 악기를 긱백에 넣고 비행기 타게 둘 순 없어. 악기가 파손되면 공연을 망치는 거잖아.”

신시아는 얼굴이 벌개져서 더 이상은 항변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전 11시.

공항 가는 길에 들른 악기점에서, 신시아는 뺨이 여전히 발갛게 달아오른 채 새 악기 케이스를 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프트 케이스 하나 가격이 380달러나 하다니…….”

악기점 점원인 꽁지머리 청년이 웃었다.

“소프트 케이스 중에서 최상급이니 그 정도 가격은 하죠. 그래도 미즈 콜먼께서 결제해 주셨잖아요.”

계산을 마친 리디아는 붉은 구찌 지갑 안에 신용카드를 챙겨 넣고 있었다.

신시아는 뺨이 발개진 채 중얼거렸다.

“대표님, 이건…… 나중에 제 돈으로…….”

“아냐. 악기 케이스는 네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밴드의 장비 투자야.”

리디아는 악기점 문을 열고 나와서 주차장으로 앞장서 가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 주 금요일에 다시 뉴올리언스로 올 때, 지금 네 베이스는 두고 와라.”

“네? 왜요?”

“네가 어제 처음 여기 올 때는 운이 좋았던 거야. 하지만 매번 악기를 들고 공항을 오가고, 세 시간 넘게 비행하다 보면 악기가 파손될 확률이 커져. 매번 객실에 들어갈 때마다 상부 수납칸에 공간이 남아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항공편마다 네 악기가 객실에 무사히 반입된다는 보장도 없어.”

리디아는 잠시 말을 멈춘 후, 콜벳의 운전석에 들어갔다.

조수석에, 새 케이스에 감싸인 베이스를 비스듬히 세워 조심조심 껴안고 타는 신시아를 보며 그녀는 마저 말했다.

“그리고 넌 아직 어리지만, 반나절씩 그걸 들고 다니다 보면 체력도 깎인다.”

“그럼 제 베이스를 안 들고 오면 어떻게 합주 리허설을 하죠?”

“당연히 네 악기를 밴드가 사줘야지? 여기 연습실에 두고 다닐 수 있게.”

“아…”

“네가 밴드에서 쓸 악기를 골라서 월요일까지 알려줘. 밴드에서 쓰는 슬랙 Slack 메신저로 링크를 보내.”

“네, 대표님.”

신시아는 너무 황송해서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이후 시간이 흘러 12시 10분.

루이스와 캐티가 이미 루이 암스트롱 공항 터미널 출발층 앞에 와 있었다.

캐티는 공항 근처에서 사 온 포보이 봉투를 들고 있었다.

신시아와 리디아는 두 사람과 합류해, 보안 검색대로 들어가기 전에 한쪽 벤치에 앉아 포보이를 나눠 먹었다.

신시아는 포보이를 양손으로 들고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진 새 악기 케이스에서는 소재의 새것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캐티가 말했다.

“포보이를 먹고 가면 든든해. 브루클린의 부모님 댁에 갈 때까지 버티겠지.”

신시아는 입 안의 빵을 삼킨 뒤 작게 대답했다.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거 아냐. 네가 점심도 못 먹고 비행기 타면 안 되잖아.”

반대쪽에선 루이스가 냅킨을 꺼내 얼른 신시아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소스 흘리지 마세요. 케이스 새것입니다.”

신시아가 순간 움찔했다.

“네, 네…!”

리디아는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보안 검색대로 혼자서 들어가기 전, 신시아는 냅킨으로 손끝을 여러 번 닦은 뒤, 투어용 소프트케이스의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어제 뉴올리언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긱백 하나를 멘 오디션 지원자 학생이었다.

지금은 프로 뮤지션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새틴 크레센트의 파트타임 베이시스트다.

신시아는 보안 검색대 앞에서 뒤돌아서더니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다음 주에 올게요!”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마치 이곳에 꼭 돌아와야 하는 사람처럼 말한 것이다.

리디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다녀와, 신디. 다음 주에 다시 만나서 본격적으로 연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