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 핫 스파이시 검보!>

신시아는 오디션을 마치고, 파트타임 근로계약서에 서명까지 마쳤다.

연습실을 나오니 오후 5시 40분이었다.

뉴올리언스의 겨울 해는 이미 졌고, 서쪽 하늘에는 마지막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간간히 부슬비가 내린 날이라서, 뉴올리언스의 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신시아는 베이스기타 긱백을 등에 멘 채 새틴 크레센트의 선배 멤버 세 사람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걸었다.

앞에서 캐티가 동료들에게 속삭였다.

“리디, 루. 얘 저녁 먹이고 보내야지?”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보았다.

“신디. 저녁 먹자.”

신시아가 순간 멈칫했다.

“네?”

캐티가 웃었다.

“합격했잖아. 설마 뉴욕에서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와서 라떼 한 잔만 마시고 돌아갈 줄 알았어?”

“아, 아니요. 그런 뜻은…….”

루이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저녁식사 시간이에요. 초대는 거절하는 게 아닙니다.”

신시아는 잠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은 오디션 지원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계약서를 썼고,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고 있었다.

변화가 너무 빨라서 신시아는 잠깐 대답을 잊었다.

리디아가 말했다.

“긴장하지 마. 비싼 데 안 가.”

캐티가 곧장 끼어들었다.

“리디나 루가 말하는 ‘비싸지 않은 데’라는 말은 대부분 신뢰하면 안 돼. 보통 서민과는 감각이 다른 사람들이야.”

루이스가 조용히 덧붙였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을 거예요. 리디도 첫날부터 부담스러운 곳으로 데려가진 않으니까요.”

신시아는 그제야 웃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캐티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영블러드. 첫 번째 밴드 교육. 뉴올리언스에서는 밥을 거절하지 마.”

세 사람이 신시아를 데리고 간 근처의 식당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버터와 향신료, 오래 끓인 스튜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신시아는 베이스기타 긱백을 조심스럽게 벽 쪽에 세워 두고 자리에 앉았다.

캐티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말했다.

“검보 네 개. 치킨 앤 안두이로 주문하자. 프라이드 오크라도 곁들이고.”

그러자 루이스가 신시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잠깐. 신시아는 괜찮나요?”

“네?”

“안두이는 돼지고기잖아요.”

리디아도 그제야 신시아의 유대인 혈통을 떠올렸다.

“아차.”

신시아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저희 집은 유대계이긴 한데 오래전부터 가톨릭이에요. 돼지고기도 먹고, 갑각류도 먹고, 장어도 오징어도 다 잘 먹어요.”

리디아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우리가 괜한 선입견을 가졌네. 미안.”

캐티가 다시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포보이도 하나 주문해. 새우 들어간 거로.”

30대 어른 여성 세 사람은 열아홉 살의 새 베이시스트를 가만히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얘가 참 솔직하고 귀엽구나. 우리도 십몇 년 전에는 이랬을까?’

잠시 뒤 검보가 나왔다.

짙은 갈색 루 위에 밥이 얹혀 있고, 그 아래로 닭고기와 소시지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루이지애나의 검보로구나!’

신시아는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한입 떠먹었다.

뜨겁고, 짭짤하고, 진했다. 케이준 향신료는 낯설었지만 겁낼 정도로 맵지는 않았다.

신시아가 작게 말했다.

“맛있어요!”

리디아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브루클린 걸이 뉴올리언스 첫날부터 검보를 잘 먹네.”

루이스는 빵을 신시아 쪽으로 밀어 주었다.

“천천히 먹어요. 급하게 먹으면 뜨거우니까.”

캐티가 포보이를 반으로 갈라 신시아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먹어, 신디. 베이스 치려면 탄수화물 필요해.”

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방금 전까지 그녀는 오디션 지원자였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는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네 사람분의 검보 냄새가 피어오르는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었다.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신시아를 보며 리디아가 말했다.

“신디. 앞으로 일 때문에 쓴 돈은 영수증 챙기는 습관을 들여. 식비도 업무 관련이면 처리할 수 있으니까.”

신시아는 숟가락을 든 채 잠시 멈췄다.

“……네?”

캐티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디는 사람을 밴드에 넣으면 세금 항목부터 생각해.”

리디아가 조용히 정정했다.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비용 처리를 위한 거다.”

신시아는 검보를 삼키고 작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지금 생각난 게 있어서 말씀드리는데요…….”

신시아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저…… 사실 오늘 호텔 예약을 아직 못 했습니다.”

그러자 세 사람이 동시에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루이스가 먼저 눈을 감았다.

“아…… 아아. 미스 레노스키.”

신시아가 움찔했다.

“네.”

“브루클린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숙박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네. 당일에 돌아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돌아가는 항공권도 아직 안 끊었어요…….”

캐티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 얘 생각보다 방랑하는 록스타 마인드네.”

리디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짧게 결론을 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자라. 게스트룸 있어.”

신시아가 당황했다.

“아, 그건 너무 폐가…….”

“폐가 아니야. 오늘부터 넌 우리 직원이야. 그리고 아직 열아홉이잖아. 지금부터 받아주는 호텔부터 찾아다니게 할 생각 없어.”

루이스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부모님께는 연락하세요. 어디서 자는지, 누구 집인지, 내일 몇 시 비행기인지.”

캐티가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이렇게도 말하렴. 네 새 보스는 좀 무섭지만 밥도 사주고 잠도 재워준다고.”

리디아가 캐티를 노려보았다.

“캣.”

“왜? 사실이잖아.”

<0009 각자의 퇴근>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거리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세 사람의 선배와 한 사람의 신참 베이시스트는 레스토랑과 밴드 연습실 사이의 길가에서 잘 먹었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루이스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캐티가 호기심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오늘도 그 댄디한 기사님 호출이야?”

루이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미스터 휘태커께서 오십니다.”

루이스가 그렇게 누군가를 호출한 지 7분쯤 지나자, 그녀들이 서 있는 길가에 검은색의 긴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검은색 10세대 링컨 컨티넨탈.

새 차는 아니었지만 관리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낡았다기보다는 오랫동안 귀한 사람을 모셔 온 차처럼 보였다.

운전석에서 키가 큰 50대 신사, 휘태커씨가 힘찬 동작으로 내려왔다.

휘태커씨는 어깨가 넓고 팔이 곰처럼 굵었다.

차콜 그레이의 미니멀한 수트를 입었고, 새치가 절반쯤 섞인 갈색 머리카락은 포마드를 발라 한 올 남김없이 뒤로 넘겨져 있었다.

콧수염도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루이스 아가씨.”

휘태커씨가 루이스를 위해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문 안쪽으로 보이는 링컨 컨티넨탈의 실내는 넓고 조용했다.

“휘태커씨. 저도 이제 유부녀이고 애엄마인데, 저를 언제까지 아가씨라고 부르실 건가요?”

“제겐 항상 아가씨이시죠.”

휘태커씨는 루이스가 올라탄 뒤 뒷좌석 문을 닫고, 길가에 서 있는 일행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숙녀분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동료분들, 내일 만나요.”

뒷좌석에 앉은 루이스는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우아하게 손키스까지 날렸다.

그 동작은 아마 점잖은 루이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난이었을 것이다.

루이스는 휘태커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라졌다.

“……방금 제가 무엇을 본 거죠?”

신시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캐티가 웃으며 신시아의 어깨를 툭 쳤다.

“뭐긴 뭐야. 루가 평소처럼 퇴근한 거지.”

“평소요?”

“응. 루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도 기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퇴근했어.”

캐티는 멀어지는 링컨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는 좋은 사람인데, 가끔씩 보면 내가 사는 세상하고 다른 차원 사람 같단 말이야.”

신시아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조금 이해가 갔다.

캐티가 다시 웃었다.

“이제 나도 퇴근해서 집에 가볼게. 내일 보자, 신참.”

캐티는 레스토랑 앞에 세워 둔 작고 낡은 피아트 500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장난감처럼 조그맣고 가벼운 차는 작은 엔진 소리를 남기며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리디아와 신시아뿐이었다.

리디아는 신시아를 데리고 길가에 세워 둔 자신의 차로 향했다.

신시아는 리디아의 차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레드와인색 2인승 스포츠카는, 과거 팝스타였던 여자의 자가용으로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리디아가 스마트키로 잠금을 해제하며 말했다.

“타.”

“와…… 이건…… 이탈리안 스포츠카인가요? 저 이런 차 처음 타 보는데.”

“외제차 아냐.”

“네? 미국차요?”

신시아에게 미국차라고 하면 시골에서 모는 픽업트럭이나 도시의 SUV, 승합차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쉐보레 거야. 콜벳 7세대.”

리디아는 차 뒤쪽으로 돌아가 해치를 열었다.

스포츠카치고는 의외로 넓어 보이는 짐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시아가 신기한 듯 눈을 깜빡이는 사이, 리디아는 그녀의 이스트팩 백팩을 받아 짐칸에 넣고 해치를 닫았다.

“뭐하니? 타.”

리디아가 조수석 문을 열어 주자, 신시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콜벳의 조수석에 들어갔다.

조수석을 최대한 뒤로 밀어 놓으니 신시아가 자신의 베이스기타 긱백을 끌어안고 탈 만한 공간은 나왔다.

리디아가 운전석에 올라 시동 버튼을 눌렀다.

부르릉!

차 앞쪽에서 잠들어 있던 V8 엔진이 단번에 깨어났다. 낮고 굵은 배기음이 차체 전체를 타고 신시아의 몸까지 울렸다.

“꺅! 이 차가 고, 고장 난 건 아니죠?! 미즈 콜먼!”

그러자 운전대를 잡은 리디아가 갑자기 신시아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정색한 얼굴로 불렀다.

“레노스키.”

“예, 예스 마담!”

신시아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미스 레노스키.”

“아! 예스 맴!”

“신시아.”

“예스, 미즈 콜먼!”

잠깐 정적.

리디아가 웃었다.

“그냥 리디아라고 불러, 신디. Just call me Lydia, Cindy.”

“예스— 어…… 음…… 대표님! Yes, um…… mmm…… Boss!”

그러자 리디아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운전대를 잡은 채 피식 웃었다.

“그래. 대표님이 차라리 낫구나. 뭐, 천천히 익숙해지면 되겠지.”

드르릉, 부릉!

엔진 소리를 울리며 붉은 콜벳이 뉴올리언스의 거리에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표님의 차, 엔진 소리가…… 둥둥 울려요!”

“V8은 가솔린으로 맥동하는 퍼커션이니까. 배기구 또한 관악기가 되는 거고.”

“……어…… 무슨 말씀이신지? I beg your pardon?”

“차차 알게 될 거야.”

리디아는 출발하자마자 기어를 1단에서 2단으로 빠르게 올리며 미소 지었다.